한겨레 기사를 읽고 생각이 많아요
기사에서 이태원 사태에 대한 국가의 대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과거에 벌어진 세월호 사태와 최근의 채상병 사건까지 이어서 설명합니다. 간단하게 축약하면 도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사람은 위험이 발생하면 탈출을 시도하고, 탈출할 수 없거나 그런 시도가 오히려 위험을 만들면 구조를 기다리는데, 이태원은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지도 못했고 구조도 작동하지 않았기에 한국 현대사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상처받았습니다. 제 조카는 이태원 사태 하루 전날 동일한 골목길을 방문했었습니다. 이태원 사태로 모두 159명의 생명이 스러졌습니다. 대부분의 목숨은 젊은이들의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한 소방관들은 책임을 묻는 정치인의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필사적으로 구조하려는 현장이 처벌된다는 위협을 당하면 누가 애써 구조할 건가요?
정치인이? 정부 공무원이?
세월호 참사도 빼놓을 수가 없죠. 책임질만한 사람들은 선제적으로 탈출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가만히 있다가 몰살당했습니다. 이 나라에 시스템이 존재하고 그 시스템이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방송을 안전을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의 말이라 믿은 겁니다.
이후로는 각자도생이 가장 중요한 말이 되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다 죽은 사람과 탈출해서 산 사람.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도 죽은 사람의 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삼풍 백화점 참사부터 지하철 고장에 이르기까지 구조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정당과 정권에 따라 대처가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무수한 개별 인간들만 있었습니다. 막후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거대한 흑막은 없었습니다. 시스템이 없으니까요.
안전장비도 없이 구조하라고 급류에 밀어 넣어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구조하는 흉내를 내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켰습니다. 거기에 진실을 드러내려는 사람도 처벌하려 합니다. 마녀 사냥은 옳지 않습니다. 책임을 꼭대기까지 모두 지라고 하는 것도 옳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재발 방지 대책과 안전을 위한 확실한 보장 규칙은 세워져야만 합니다. 소중한 자녀를 군에 보내놓고 그 안에서 발생한 사고를 군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대가 맞습니까?
저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적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 거기에 참석한다고 뭐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단 천명이라도, 아니 단 백 명이라도 촛불집회에 국민이 참여한 사안은 극히 중요하게 여기고 샅샅이 원인 분석을 통해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한 사람의 백배, 천배 되는 시민들이 정부의 대응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사안과, 국민의 생명이 걸린 사안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명품백 논란은 쓸데없는 정치적 사안이고, 채상병 사건은 생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나중에 우리 아들들이 군데 갔을 때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누가 보장할 수 있나요?
엄기호 교수님의 글 마지막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게 과연 나라인가?”
오늘의 결론: 슈퍼맨이 구해주러 오지 않습니다. 홍길동이 구해주러 오지 않습니다. 안전을 위한 시스템은 반드시 구축되어야만 합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