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15
저자는 책의 초반에 나왔던 남자의 공간에 대해 다시 이야기합니다. 자동차 안이 남자의 유일한 공간이 되다 보니 차만 타면 공격적이 된다는 설명이죠. 내 앞의 공간을 누구도 침투하지 못하게 하려는 운전 습관이 절로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끼어드는 차에 격분하는가 봅니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주장도 의미심장합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고 했지요. 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의식을 변화시키는 주제라는 겁니다. 내 차 안에 홀로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면 묘하게 안정감이 드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자의식은 공간의 통제감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아이들이 방문을 잠그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됩니다. 중3 녀석은 조금 더 성숙해졌는지 이제 더 이상 방문을 잠그지 않아요. 중1 녀석은 6학년 때부터 자주 잠그기 시작했습니다. 이 녀석도 더 자라면 안 잠그게 될까요?
안방은 아내의 것. 아이들 방은 아이들의 것. 거실은 공용의 공간. 그럼 아빠의 공간은 어딘가요? 저는 베란다에 조그만 책상 하나 놓고 서재라고 이름 붙이고 나서는 아주 행복해졌습니다. 여름에 정말 무더운데, 베란다 창 안쪽에는 에어컨을 틀어놓았어도 굳이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서재에 앉아있습니다.
베란다 확장한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면 어쩌지? 벌써부터 걱정을 합니다. 가벽을 세우는 건 너무 오버하는 거 같고, 커튼으로 두를까? 아니면 책장으로 벽처럼 두를까? 거실을 줄여서라도 남자의 공간은 꼭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안되면 땅굴이라도 파야 한다는데 왜 공감이 가는 거죠?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는 점은 적극 수긍합니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라는데 확실히 제 표정은 더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의 자존감도 자기 방이 있을 때, 자기만의 공간이 있을 때 더 성장한다고 하니 잠그는 것을 가지로 뭐라 하면 안 되겠네요.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은 어찌 보면 참 꼬질꼬질합니다. 그런데도 중년의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인기가 있다죠? 저도 TV를 거의 안 보지만 우연히라도 자연인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으면 꼭 소파에 앉게 됩니다. 아마도 아무리 꼬질꼬질하더라도 그들의 ‘자유’가 부럽기 때문이겠죠? 저자는 마음껏 불 피울 수 있는 자유를 찬양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진 못했는데 맞는 거 같아요. 캠핑 열풍도 불 피우기의 확장이라는 거죠.
거기에 아주 중요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평생 일터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이 땅의 남자들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자연 속에서 나만의 탈시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하며 자연인을 바라보는 거 아닐까요?
그래요. 저도 언젠가는 용감하게 나만의 자연인을 찍고 싶습니다. 산속에서 모험을 즐기고, 나만의 땅굴도 파보고. 음? 자연스럽게 온라인 쇼핑에서 엔진삽, 뿌레카 같은 단어를 입력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찜한 상품도 몇 개 있어요. 매일 조금 더 행복한 상상으로 가득 채우기를!
오늘의 질문: 자기만의 공간을 어디에 마련할 계획이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