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0년도 넘게 보질 못한 미국 이민 간 사촌 동생네 가족과 식사를 했습니다. 따져보면 정말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입니다. 중학생 때 이민을 가서, 지금은 만 50세가 된 사촌 동생. 대학생이 된 아들 둘을 데리고 나왔는데 참 어색하더군요.
아들들을 아주 잘 키웠습니다. 돈과 성공보다는 신념과 믿음과 사랑을 원하는 어른으로 키웠더군요. 대학생 아들들이 엄마(사촌동생)랑 알콩달콩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사춘기 시기가 없었냐고 물어보니 그럴 때마다 해외 오지에 봉사 여행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자신보다 어렵게 살고 있는 지역에서 봉사하다 보면 지금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절로 깨닫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부와 봉사의 습관이 들어서 청소년 때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잘 자라왔다고 합니다.
저도 아들들을 키우면서 참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어떻게 해볼 경지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같았으면 어딜 중고등학교 방학 때마다 해외 봉사를 보냅니까? 학원 몇 개 더 다니며 잠을 줄여가며 공부시키기 바빴을 텐데.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 아들들을 어쩌면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감탄을 하고 왔으니 말이죠.
우리는 가슴 깊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이해받기를 항상 소망하는 것 같습니다. 업적에 대한 이해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불행한 사실은 항상 그런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도리어 그런 소망 때문에 나의 에너지를 빼앗기고 내가 집중해야 할 진짜로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소망을 놓아버리면서 냉소적이거나 고립적으로 변하지 않기는 참 어렵습니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모든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감정은 종종 우리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모든 사람의 이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발걸음이 더는 눈치 볼 필요 없는, 당당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빈번한 집중의 방해 요소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분이 아니라 초 단위로 쏟아지는 알림, 뉴스, SNS피드는 우리의 시선을 계속 밖으로 돌립니다. 이런 환경에서 내 안을 바라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죠.
성찰이라는 단어. 불교에서만 쓰이는 단어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깊은 속 마음을 찾아보는 성찰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짐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뭐지?
지금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뭐지?
지금 내 감정을 격화시키는 근원은 어떤 생각 때문이지?
내 고통을 나 스스로가 더 강화시키고 있지는 않나?
이런 성찰의 질문들은 불편합니다. 좀 피하고 싶고, 무시하고 싶은 나의 내면을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적인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없이는 반성이 없는 삶을 살게 되죠.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남에게 받는 인정을 구하기보다, 스스로 성찰을 통해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결국 더 건강한, 충만한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되는 건 아닐까요? 피하지 마세요. 결국은 나를 위한 질문들입니다.
오늘의 질문: 어떤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고 싶으신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