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경제신문을 구독 중입니다. 온라인 버전을 구독 중이라 실제 신문이 배달되는 것은 아닌데요, 여러 개의 신문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실질적으로 시간이 부족함을 느껴 딱 한 개만 구독하기로 했고, 그것이 한국경제신문이죠.
IT업계 출신이라 전자신문도 구독하고 싶기는 한데, 현직은 아니라 은퇴를 했기에 그냥 경제신문으로 만족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경제 신문을 읽다 보면 기업 친화적인 신문 논조를 확실히 느낄 수가 있어요. 보수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F의 시대에 보수가 놓친 것”은 지난 토요칼럼에 정소람 기자님이 쓴 기사입니다. 저는 T에 속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완전, 극히 공감이 되는 기사였습니다. T형 인간이 어디가 부족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바꾸기 진짜 어렵다는 것도.
피자 배달 기사가 미끄러지며 엉망이 된 피자를 보며 T는 “아이고, 피자, 변상해야 할 텐데” 말하고, 넘어진 사람부터 걱정하는 것은 F라는 말에 피식 웃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괜찮아?”하는 사람은 F고, “왜? 뭘 잘못했어?”하는 건 T라는 거죠.
그런데 T형 인간은 상대편을 걱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에 더욱 공감을 했습니다. 원인을 찾아갈 길을 제시해 주려는 T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는 거죠. 진짜 그래요! 애정이 없으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죠!
아내와 대화를 하며 10년이 넘도록 연습한 끝에 드디어 조금 F의 언어를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단, 아직은 아내에 한정해서 말이죠. 아내가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났었다고 말하면 이제는 어이고 고생했네! 잘 참았어! 그 사람 못된 사람이네!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줍니다.
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캐묻고 그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식으로 훈수를 두곤 했죠. 큭. 지극히 T스럽나요? 언젠가 아내가 아니, 나는 응원을 받고 싶은 거야라고 구체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뒤부터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국민의 힘 경선 4강에 든 김문수, 한철수, 한동훈, 홍준표 4명 모두 자신을 T라고 소개했다고 합니다. 시스템을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냉정한 사고의 영역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용하고 감싸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실종된 상태죠.
정치의 영역에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F가 훨씬 유리한가 봅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요? 사람을 위로하고 응원해 주는 언어는 T의 언어보다는 F의 언어가 더욱 적절하니 말이죠.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 중에서 누가 자식의 마음(표)을 잘 살 수 있을까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은 저는 딱히 하지 않고 있어요. 서울 태생이라 지역감정도 없고요. 오직 그 사람의 정책과 살아온 이력을 보고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할 겁니다. 세계적으로 혼란이 극심한 지금,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뽑혀서 최선을 다해 일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향을 떠나서 대화할 때는 F의 언어를 더 많이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상대를 배려할 때 더 기분 좋고 행복한 개개인의 하루가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마치 제가 10년의 훈련을 통해 아내에게 말하듯이요.
오늘의 질문: 여러분은 F의 언어를 더 사용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