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직장은 섬유업종이었습니다. 1999년 당시 대기업이던 기업에 공채로 입사를 했죠. IMF의 여파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라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죽하면 아직도 기억을 할까요? 173대 1이었습니다.
무지하게 어렵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고 나니 애사심이 정말 하늘을 뚫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1999년이면 아직 20세기잖아요? 21세기를 코앞에 뒀잖아요? 몇 개월 미주사업부에서 근무를 하니 재미는 있었지만 21세기에 섬유나 원단 업종에 종사하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조건 미래에 대박을 칠 IT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죠. 이걸 입사한 후에 생각하다니, 참…
우여곡절 끝에 IT라고 생각되는 벤처기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변명이지만 제 전공은 마케팅이었어요. IT 업계가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그 회사가 IT라고 주장하면 그런가 보다 싶었던 시기였습니다. (창피) 그래서 이직이 확정되자 열공모드에 들어갔죠.
회사의 상품의 스펙시트와 매뉴얼에 모르는,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한 개도 없을 때까지 읽었습니다. 업계의 주요 뉴스를 알려주는 산업 잡지의 1년 치를 모두 모아서 모든 기사를 정독했습니다. 이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우리 회사, 경쟁 회사, 해외 회사 등의 정보가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쯤 깨달았습니다. 아, 우리 회사는 IT회사가 아니구나. ㅡㅡ;;
IT로 억지로 꼽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통신 부품 제조업에 가까운 회사였습니다.
이래서 대학시절에 학교 공부만 하면 안 됩니다. 취업을 생각한다면 어느 업종에 취업하고 싶은지 미리 고민하고, 그 업종의 기업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위쪽의 업계와 아래쪽의 업계는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따져보면 미래에 내가 어디서 근무하고 싶은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면접 보기 전에 이 공부를 하면 확실히 면접 점수가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지금 회사가 통신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라면, 위쪽은 TV나 네트워크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일 것이고, 그 위는 통신사나 미디어 기업이 될 수도 있죠. 반대로 아래쪽은 부품에 들어가는 원자재, 즉 통신칩 같은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일 수가 있습니다.
내 회사가 잘 되려면 아래쪽의 경쟁력 있는 부품을 잘 찾아서 거래해야 하고, 위쪽의 기업들 중에 어디가 잘 나가고 있는지, 발전하고 있는지 따져봐서 새로운 거래를 뚫거나 기존 거래량을 늘려가야 합니다.
이 모든 정보는 우리 회사 제품의 스펙시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스펙이 왜 중요한지, 어째서 여기에 적혀있는 것인지, 고객이 중시하는 요소는 어떤 것인지 이해를 해야 내 제품의 강점을 더 잘 파악하고 설득력 있는 마케팅과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내 제품을 잘 모른 채 선배나 상사가 알려준 방식을 답습해 그대로 영업을 하려고 한다면 실적을 운에 맡기는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후배가 들어오면 일단 조사하고 공부부터 하라고 말하곤 했죠.
우리는 물건을 사면 직접 사용부터 하는 사람과 매뉴얼부터 꼼꼼히 읽는 사람으로 보통 나뉩니다. 하지만 그 상품을 가지고 영업을 하고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대충 시작하면 안 됩니다. 완전한 상품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시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더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합니다.
새로운 업계에 도전하는 것은 사실 부담이 되기도 하고 기존의 네트워크를 버려야 하기에 손해가 일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업계가 전체적으로 정체되어 있다면, 보다 발전하는 업계로 이동하는 것도 전혀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보통 업계를 이동해도, 직무는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경력을 인정받을 테니 말이죠. 제가 섬유에서 IT로 갈아탔어도, 같은 해외영업부 직무를 맡아서 한 것도 그래서 그렇죠. 직무를 바꾸는 것은 업계를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장기 프로젝트로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의 위치가 어디에 있든지 미래의 나를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매일 오늘 할 일을 실행하다 보면 더 좋은, 더 멋진 기회들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파이팅입니다~!
오늘의 질문: 당신의 호기심이 당신을 부르는 그곳은 어느 쪽인가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