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과 함께 시작한다.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는 순간부터, 이 책 저 책을 모두 펼쳐 놓고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계획을 짜기위해 머리를 싸매던 순간, 책에 실린 멋드러진 사진에 홀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출발 전날 정신없이 짐가방을 다싸곤 침대에 누워 기뻐하는 순간, 그리고 비행기 티켓을 받아 기내에 오르는 순간까지. 매 순간마다 새로운 땅이 주는 신비로움과 기대감을 만끽하며 두근대는 심장을 느끼는 것은 여행자을 떠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쾌락이다.
나도 직장생활이 이어지던 날들 중에 조금씩 짬을 내어 항공편을 알아보고 숙박도 예약하고 트레킹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며 한 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특히 베이징으로 가족여행도 다녀오기로 되어있었기에 나에게 1월은 진짜 '여행의 달' 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는 추진력을 얻을 여행을 그토록 기다려 왔다.
그런데.. 왜일까? 그렇게 기다려 왔던 네팔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 조금 낯설다.
지난 8월부터 준비해서 5개월만에 떠나게 된 여행이지만 조금의 설레임도 흥분됨도없다. 지난 6개월의 시간동안 매일 매일 해야하는 일에 묻혀 살면서 여행이주는 설레임에 제대로 집중해 본적이 없어서 였을까.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갈 때면 매번 인천공항을 가르키는 표지판을 보고 설렘이 스물스물 올라오곤했었는데, 왜인지 담담하다 못해 모든것이 무료하다. 이번 여행에서 얻고 싶은게 많은데 문득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항버스를타고 가는 한 시간이 이렇게 심심할 줄이야. 귀에 이어폰을 꽂은채 창문밖의 풍경들을 지긋이 바라보다 창문에 성에가 낄때쯤 나도 몰래 스스륵 잠이 들어버렸다.
이번 여행이 대박이 나려고 하는건지 여행의 시작은 삼재로 시작했다. 여행자금이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던 터라 받을 돈을 모두 모아 출국전에 카드에 넣고 가야지 하고 출발했는데 아침에 공항에서 입금을 한다는걸 홀라당 까먹은채 출국심사를 받아버렸다. 면세구역에 atm기가 있기를 바라며 안내데스크로 달려가 봤지만 법규상 면세구역에는 환전소만 있고 은행업무는 할 수 없게 되어있단다. 하.. 네팔은 한국돈 환전도 안된다던데, 여행기간 내내 쓰지도 못하는 한국 돈 몇십만원을 들고 가슴 졸이며 여행하게 생겼다. 이 멍청이..
날씨는 또 왜이러는건지 아침에 출발할때만해도 그냥 조금 흐린날씨였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탑승동에 나가자 함박눈이 펑펑내리기 시작한다. 으.. 오전내내 조급했던 마음탓에 비행기 타기전에 바삐 움직였던 몸 조금이나마 쉬면서 가라앉히려 했는데, 급한마음에 괜히 걱정거리만 하나 더 늘었다. 이러면 비행기가 떠도 걱정 안떠도 걱정인데.. 경유지인 청도에 도착해서 저녁에 짧은 관광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설마 결항되겠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비행기에 오르기전 점심을 챙겨먹으러 탑승게이트 근처에 있는 타코벨에 들렀다. 아... 그리고 두번째 불행을 만났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고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온 바지에 고기소스를 왕창 흘렸다. 황급히 물티슈로 열심히 닦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바지엔 껌이 붙었다 떼진 것 마냥 거뭇거뭇한 얼룩이 생겼다. 휴.. 가자마자 빨래부터 다시 해야겠다. 그래도 아침부터 조금 서두른 탓에 밥먹을 시간도 챙기고 주변 지인들에게 안부전화 돌릴시간도 있어서 다행이라며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위로한다. 이래저래 여행준비를 빌미로 그동안 뜸했던 안부도 전하고 마음도 차분히 하며 몇 십분 남은 시간을 죽인다. 그리고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아! 삼재완성.
화장실에 가다가 의자 모서리에 정강이를 콕! 으아아아!!!!!!! 저번 가족여행때도 출발전에 왼쪽 정강이를 부딫혀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엔 오른쪽 정강이다. 화장실까지 걸어가는데 계속해서 쓰라려 오는게 이번에도 상처가 오래 남겠구나 싶다. 겁나게 아팠지만 여행전 삼재를 완성했으니 이제는 좋은 일만 있겠지라는 생각에 그동안 내심 안고있던 걱정들이 조금은 날아가 버린것 같다.
아직 밖엔 눈이 점점 더 거세게 오고 있었던 터라 청두에서 그리고 카트만두에서 연결편을 타야하는 나는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비행기에 오른다. 다행히 여행가는날 큰 걱정을 안겨주던 꾸릿꾸릿한 회색빛의 구름들은 비행기가 날아오르고 나니 저 밑의 새하얀 운해로 변해갔다.
함박눈을 한 아름 안고 있을 구름들을 위에서 보니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름들이 모여 새하얀 구름의 바다가 되었고 그위에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 쬐며 긴 시간을 비행기에 탄채 이동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눈요기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구름 위 하늘의 맑은 풍광을 감상하며 4시간을 날아 청두에 도착. 아침부터 시작된 걱정들과 달리 별일없이 네팔로 가는 첫 번째 비행이 마무리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