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두에서 라싸가기
여행 둘째 날. 허름했던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나쁘지 않았다. 낙후된 시설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따뜻한 물로 샤워도 했고, 밤새 온풍기도 쌩쌩 잘 돌아갔기에 공짜로 묵게 된 호텔치곤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은 됐다. 어제저녁 지역명소에서 짧은 관광도 했고 여행의 첫 끼니부터 8만 원이란 거금을 들여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 요리도 맛있게 먹었기에 청두에서의 하룻밤은 나쁘진 않게 기억될 것 같다.
이제 정말 네팔로 가는 날. 아침 일찍 청두에서 라싸를 경유해 카트만두로 들어가는 여정, 그리고 카트만두에서 국내선을 타고 포카라로 이동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여행 중 가장 힘든 여정이지 않을까 싶다. 아침 7시 30분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호텔 직원의 모닝콜로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간단하게 샤워도 하다 보니 어느덧 6시가 다 되어온다. 부랴부랴 어제 우릴 맞이해줬던 봉고차에 다시 올라 청두 국제공항으로 간다. 청두는 중국 본토의 서쪽에 위치해 있기에 넓은 땅떵어리임에도 전국 공통 시간대를 사용하는 중국의 정책상 아침이 참 이르다. 현지시간은 6시지만 분위기는 새벽 네다섯 시 밖에 안 되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이른 아침의 공항은 참 낯설다. 어쨌든 늦지 않게 도착! 카트에 짐을 싣고 티켓을 발권하려는데 아니 웬걸 수속 창구가 안 보인다. 안내스크린에는 분명 게이트 16,171이라 쓰여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도대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공항을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한참을 찾아 헤맨 후에야 창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국내선 국제선이 나누어져 있지 않고 한쪽 구석 게이트를 통과해야지만 국제선 창구가 나오는 거였다. 내가 가본 공항중에 최악이다.
다행히 늦지 않게 티켓을 발권하고 탑승동에서 라싸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사실 내 계획에 라싸는 없었다. 티베트의 중심지 라싸는 내 버킷리스트에서도 제일 위에 있는 여행지이지만, 비행기를 두 번이나 환승해야 하는 일정은 피하고 싶었기에 라싸 경유는 내 선택지에 있지 않았다. 이런 내가 왜 라싸를 가는 비행기를 타느냐, 이게 다 중국국제항공 때문이다. 처음 항공권을 구매할 때 청두에서 바로 카트만두로 향하는 일정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구매 며칠 후 중국국제항공이 전화로 라싸 경유로 바뀌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왔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좌석이 다 차지 않으면 중간중간 이런 식으로 행선지를 바꾸는 경우가 허다한 항공사란다. 그때는 환승호텔도 있고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라싸'니까 그냥 넘어갔었는데 환승호텔 수준도 그렇고 두 번 경유하는 일정을 직접 겪고 나니 항공사가 원망스럽다.
탑승동 게이트 앞에 도착하니 하나 둘 한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아하니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 우리처럼 개별로 트레킹을 가는 사람, 단체로 트레킹을 가는 모임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네팔로 간다. 얼굴엔 기대감으로 가득 차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같이 온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건 모두가 똑같은 마음인지 이른 아침부터 밝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청두 공항의 탑승동은 네팔로 향하는 내 마음도 한 껏 날아오르게 해주었다. 드디어 라싸행 비행기 탑승! 별 다른 문제 없이 라싸 공항에 도착했다. 별로였던 쌀 죽 한 공기, 빵 한 조각이 전부인 아침 기내식과 기내 캐빈이 부족했는지 내가 앉은자리의 뒷열 쪽에 한가득 적재한 승객들의 캐리어들이 비행 내내 맘에 걸렸던 것 빼고는 괜찮은 비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나니 좀 큰 문제였던 거 같기도.... 그렇게 도착한 달라이 라마의 땅 라싸에서 스펙터클한 타임어택이 시작되는데…….
시작은 라싸에서의 딜레이. 원래 라싸에서의 출발 예정시각은 오전 11시 50분, 그런데 12시가 넘어도 보딩을 시작할 생각이 없는 듯 게이트 앞 데스크엔 아무도 없다. 나중에서야 카트만두 기상상태 때문이란 걸 알게 됐지만, 인천에서 그렇게 안 좋은 날씨를 뚫고 이륙한 걸 생각해보면 음……. 그렇게 라싸 공항에서의 대기는 계속되고 우린 하염없이 게이트 오픈만 기다리고 있었다. 저지대의 청두에서 3000m 이상의 고지대인 티베트 고원에 있는 라싸에 한 번에 올라사 인지 서서히 숨 쉬는 게 힘들어지고 급기야 머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고산병의 증상이다. 오후 1시쯤이 되어가자 직원들이 라면과 물을 나눠준다. 라싸 공항에는 면세점인 척하는듯한 기념품과 특산품을 판매하는 매대와 작은 간이 편의점만 있었기에 점심을 거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중국 라면을 먹으며 옛날 생각도 하고 심심치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라면을 먹고 나니 보딩이 시작되고, 1시 50분쯤 라싸 공항을 떠나 다시 날아올랐다.
이륙을 하고 나니 드디어 조절된 기압 탓에 두통이 좀 사그라든다. 두통이 사라지니 창밖을 내다볼 여유도 생긴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행기에서 저 아래 보이는 라싸를 내려다보니, 그저 스쳐만 지나가는 라싸가 너무 아쉽기만 하다. 언젠간 저 땅에 다시 설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창밖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그때 흘러나오는 기내방송, "저희 에어차이나를 이용해주시는 승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라싸를 출발하여 카트만두로 향하는 에어차이나 CA407편은 현지시각 '13시 50분'에 목적지 카트만두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라싸와 카트만두의 시차는……". 뭐? 1시 50분? 예약한 국내선이 2시 50분인데?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공항에 내려서 비자를 발급해야 하고 수하물을 찾은 다음 어딘지도 모르는 국내선 청사로 다시 이동해서 수속을 받고 짐을 싣은뒤 보딩 시간에 맞춰 탑승해야 하는 이 모든 일정을 한 시간만에 끝낼 수 있는 건가……. 일단 내리자마자 무조건 뛰는 수밖에, 못 타면 국내선 다시 끊고 내일 가는 거지 뭐. 에휴, 우선 좀 잠이나 자면서 쉬어야겠다.
이번 여행, 뭔가 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