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시 타오르다.

:: 계기

by KEVIN LEE

스페인에서 900km를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와 부랴부랴 집을 얻어 시작한 대만에서의 인턴생활이 익숙해져 갈 무렵, 늘 그랬듯 내 가슴은 다시 뜨거워지길 원하고 있었다. 타국에서의 첫 사회생활이 주는 새롬이 익숙함이 되어 현지인 인양 살아가게 되며, 회사 업무시간에 짬이 날 때마다 인터넷 속에서 더 새로운 것들을 찾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그 날도 무심코 인터넷 기사를 끄적거리며 현재가 주는 지루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하얀 설경의 히말라야 사진 한 장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그 날은 더 이상 어제와 같은 지루한 하루가 아니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끌어준 도서관의 책 표지처럼, 모니터 속 세상 어느 곳보다 깨끗할 하얀색의 눈으로 덮여 고상함을 뿜어내는 히말라야 산맥의 자태는 다시금 내 가슴에 불을 지펴주었다. 겨울이 따뜻한 나라, 스키를 타기 위해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야만 하는 대만에서 겨울 아닌 겨울을 보내고 있던 나였기에, 하얀 눈의 모습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히말라야는 그렇게 찾아왔고, 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아 6개월 대만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2015년 8월을 목표로 대만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본격적인 준비하리라는 계획을 품고 오른 귀국 행 비행기. 그러나 그게 내 계획의 마지막이었다. 2015년 4월 25 네팔을 강타한 유례없는 강진.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해 히말라야를 품고 있는 네팔의 전 국토를 풍비박산 내버린 참혹했던 그 지진과 함께 히말라야를 향한 내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얼마 후 나는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고, 여행은 뒤로한 채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침 6시 반 기상에 9시 출근, 그리고 이어지는 야근.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회사에서 일하는 기쁨이 더 컸기에 힘들지 않았다. 되려 이 정도 힘듦은 앞으로 더 큰 일을 위한 트레이닝쯤으로만 여겨졌다. 그렇게 즐거우면서도 무거운 하루하루는 정말 빨리 흘러갔다. 계약직이었기에 일을 하면서도 취직에 대한 고민을 한 아름 안고 매일매일을 혼자 속으로 앓기를 또 몇 달. 어느 날처럼 마우스로 모니터 창을 기웃기웃 대고 있던 나에게, 또다시 히말라야가 다가왔다. 어느 웹사이트 메인에 걸린 황정민 주연의 영화 ‘히말라야’ 광고. '8월에 다녀왔더라면 정말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을 텐데...' 하지만 더 이상 히말라야는 내 가슴을 뛰게 해 주는 펌프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저 눈으로만 뽀얀 아름다움을 담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때.




아쉬움을 머금고 있던 내 눈에 띈 또 하나의 사진 한 장. 슈가파우더를 뿌려 놓은 듯 하얗게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포근하게 감싸 오는 네팔의 일출의 한 장면을 본 순간,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가고 싶다.





다시금 기쁨에 가득 찬 난, 8월에 같이 가려고 했었던 후배 놈한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히말라야에 아직 가고 싶으냐고 묻는다.






그렇게 우린, 다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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