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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허영의 옷을 버리며

딴엔 고군분투 - 과대포장

by 케빈은마흔여덟

[인생에서 생물학적으로 가장 생기가 넘칠 때 남들을 부러워하고 나를 미워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사람들은 저마다에게 달과 같아 밝게 빛나는 면을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어두운 절반을 안고 산다는 것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 별로여도 좋아해 줘/ 정문정]




사회는 점점 평등해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허영심을 자극하는 장면은 곳곳에 남아 있다.


한 선배는 경차를 타고 호텔에 갔다가 주차관리인에게 무시당했다고 한다. 도로에서는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차선을 바꾸기 쉽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나만 해도 고급 수입차가 앞에 있을 땐 괜히 차량 간격을 넓히곤 했다. 긁기라도 하면 감당이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어쩌면 위축된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 사이에선 전세냐 월세냐가 입방아에 오르고, ‘휴거지’(휴먼시아+거지) 같은 말까지 있다. 사는 수준보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결국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느 정도 대접받고 싶다’는 욕망이 깔려 있는 것이다.


퇴사 후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정장이 너무 많았다. 매년 몇 벌씩 사들인 결과, 40벌이 넘었다. 한두 벌만 남기고 나머진 정리하기로 마음먹으니 뭘 이렇게 많은 정장을 샀나 싶다


내가 어릴 적엔 가난을 부끄러움으로 여겨야 한다고 부추겼다. “공부 안 하면 청소부 된다”는 말을 선생님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던 시절이었다. 급식이 없던 때, 김치 반찬만 싸 온 친구는 놀림을 받았고,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던 친구들은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희생이 컸다는 걸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특히 어머니는 옆집 냉장고에 고기가 가득하던 걸 부러워하셨다고 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본가 냉장고는 자식들에게 언제든 고기를 내줄 수 있을 만큼 채워 놓으신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부자에 대한 막연한 선망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며 자주 듣던 말

“이 차장은 벤츠 뽑았다더라.”

“부장님은 이번 휴가를 하와이로 간다네.”이런 말들 속에는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지위와 소비는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나도 그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낙오자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부자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가난해 보이는 건 싫었다. 돌아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참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다.


한창 연애하던 시절, 칼주름 잡힌 바지에 브랜드 정장을 입고 나를 포장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그 습관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쩌면 내 안의 자격지심과 부족함을 감추려는 과대포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명절 선물처럼 겉만 번지르르했던, 실속 없는 나 자신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열망 사이에서 계속해서 나를 꾸며야 했다. 유행을 따르고, 비싼 음식을 먹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사는 게 나를 더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줄 알았다. 우울증이라는 후유증을 남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실제의 모습보다 부풀려 보이려는 건 허영심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비어 있는 사람일수록 더 요란하게 포장한다. 그 삶을 감수할 수 있다면 능력일 수도 있겠지만, 감당하지 못한다면 탈 나기 전에 내려놓는 게 낫다. 소유에서 오는 만족감은 상대적이라고 하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비교에서 오는 만족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채우지 못하는 만족은 포장한 빈수레를 만들어 가랑이가 찢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니 비교를 멈춰야 내가 산다.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다.

많이 번 만큼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면, 내가 번 돈을 소비하면서 자존감도 함께 자란다. 자기 성장과 사회 기여를 통해 얻는 내적 만족으로 나타난다. 각자 힘들게 번돈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사람이 남들 직업을 깔보고, 소비를 낮추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퇴직 후 수입이 끊기자 예전처럼 소비할 수 없었다. 처음엔 불편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괜찮았다. 쓸 돈이 없기도 하지만, 더 이상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밀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군대 휴가를 나가기 전 아무리 때 빼고 광을 내도, 나가면 결국 다 군인이다. 그렇게 꾸며봤자 자기만족일 뿐, 누구도 군인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칼주름 정장과 광 낸 구두를 신었던 그 시절, 정작 남들은 나를 그렇게까지 의식하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세상을 본다. 내가 타인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면, 타인도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다. 허영심을 부추기고 남을 깔보는 사회 속에 있었기에, 나의 시선도 그 기준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부터 그런 시선을 내려놓는 게 시작이다.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누구도 청소부나 막노동꾼을 대놓고 낮추지 않는다. 시대는 달라졌고, 환경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내 가치를 알고, 평가의 기준을 내 안에 두어야 내 삶이 편해진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 스스로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 없다.


포장하지 않아도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것, 그게 진짜 매력이다.


#딴엔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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