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감과 소주 한 잔

by 케빈은마흔여덟

2월 22일

누님은 이번 나들이에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부친은 아프기 전에도 누님의 결혼 생활에 불만이 많으셨는데,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의 앙금은 다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다.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면 참지 못하고 쏟아내신다. 언젠가 한 번은 차 안에서 달리는 내내 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신 적이 있었다. 내리지도 못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누님은 그 지긋지긋하고 반복적인 불만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아마 그날 누님은 마음의 이골이 났을 테다. 그 이후로는 같이 가자는 말에 '일이 있다'며 거절한다. 함께 하면 모친까지 같이 챙길 수 있어서 내가 조금 편하긴 하지만, 그런 누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 차마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한집에 살며 아버지를 모시는 누님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누님은 매번 내색하지 않고 살갑게 말한다.

“아버지, 올 때 파전 하나 사다 주세요.”

일을 기억할리 없는 아버지는 대답하셨다. “알았어”


오랜만에 주말 기온이 영상을 기록해서 부모님과 자주 가는 대부도로 나갔다. 한참 만에 따뜻할 줄 알고 나섰지만, 황사 섞인 먼지와 매서운 바닷바람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나왔는데 밖의 풍경 좀 보세요. 저 옆에 바다 한번 보세요.”

“뿌예서 하나도 안 보인다”

사실 내가 봐도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데, 시력도 좋지 못한 노인에게 낭만적인 대꾸를 기대한 건 애당초 무리였을지 모르겠다.


막걸리로 기억하는 칼국숫집에 앉자 부친은 역시나 막걸리를 찾으셨다. 하지만 선뜻 잔을 채워드리기엔 내 마음의 짐이 너무 컸다. 부친이 재입원했을 때도, 모친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던 때도 공교롭게 막걸리를 마신 그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종이컵 반 잔도 안 되는 한 모금이 부모님의 건강에 치명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내 잘못일지 모른다는 자책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따로 무알코올 맥주를 준비했다. 사업장인 점을 감안해 먼저 점원에게 정중히 사연을 더해 물었고, 사장님은 흔쾌히 괜찮다고 답했다. 무알코올 맥주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부친은 그저 맥주가 맛있다며 350ml 한 캔을 거의 다 비우셨다.


육지에서 대부도로 넘어가는 중간쯤 ‘시화나래 휴게소’가 있다. 그곳엔 무척 높은 ‘달전망대’ 건물이 있고 꼭대기에 커피숍이 하나 있다. 전망대가 공짜라 늘 문전성시인 곳이다. 예전에 운 좋게 자리를 잡아 함박눈이 날리는 광경을 부모님과 본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매번 자리를 잡지 못해 1층 커피숍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올라가지 않고 1층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주차였다. 부친의 다리가 괜찮을 때만 해도 휴게소에 차를 대고 천천히 걸어갔지만, 이제는 그만큼의 거리도 부친에겐 힘겨웠다. 황사 섞인 바닷바람도 걱정스러웠다. 고민하다가 타워 바로 옆, 관리인이 지키는 장애인 전용 주차장이 생각났다. 일단 가서 부탁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법을 잘 몰랐다. 괜히 말했다가 분위기가 이상해지느니 차라리 내 불편을 감수하는 게 편했다. 하지만 내 선택이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고, 동료들에게 손해를 전이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가급적 ‘일단 말해보는’ 결정을 하게 됐다. 무알코올 맥주도, 주차장 문제도 예전의 나였다면 그저 부모님의 불편으로 끝냈을 일이었다.


“부친이 몸이 불편하신데 전망대에 가고 싶어 하셔서요. 여기에 주차를 할 수 있을까요?”

관리인은 “원래 안되는데, 내려만 드리고 차는 다시 휴게소에 옮겨주셔야 합니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았다. 많이 걷지 않고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수 있었다. 1층 카페는 예상대로 한가했고, 테라스 아래로 보이는 바다는 제법 부는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이었다. 누나가 사준 새 신발을 신고 달콤한 라테를 나시며 소녀처럼 웃는 모친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잘 나왔다 싶었다.


한동안 날이 추워 집에만 계셨던 부모님을 뵈면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빨리 한번 모시고 나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재촉했다. 날이 풀려 그 죄송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나선 길이었지만, 역시나 덜어내기보다는 빚을 더 얹어온 기분이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내내 늙은 부모는 여전히 자식 걱정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매서운 바닷바람 탓에 휴게소 산책은 포기해야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나들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비워내지 못한 자식의 이 부채감은 언제쯤 덜어낼 수 있을까.



2월 25일

새벽 4시, 휴대폰 화면에 울리지 않은 부재중 전화 한 통이 또 남겨져 있었다. 모친이었다. 찰나의 순간 또 한 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내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밤늦게 게임을 하시려다 실수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누나에게서 따로 연락이 없었던 점으로 보아 큰 문제는 아닐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누나에게 카톡을 보내 확인하니, 역시나 지난번처럼 잘못 누르신 ‘오발탄’이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려던 순간, 누나가 전해준 새벽의 사연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부친이 새벽에 모친을 깨워 돈이 없으니 있지도 않은 집을 팔자며 조르셨단다. 기억의 혼란 속에서 집요하게 이어졌을 부친의 고집. 모친은 결국 다시 잠들지 못한 채,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내려 휴대폰 속 게임을 켜셨던 모양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여드려도 전화 외엔 문자 한 통 보내는 것조차 서툴던 분이었다. 그런 모친이 이제 게임을 하신다. 그것이 노년에 찾은 새로운 취미일 리도, 기기 조작의 즐거움 때문일 리도 없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병든 남편의 곁을 지키며 따로 풀 길 없는 그 지독한 답답함을 누워서 게임하는 것으로 겨우 달래고 계신 것이다. 새벽에 걸려 온 전화는 편치 않았지만, 차라리 게임이라도 더 알차게 즐기시며 그 고단한 시간을 잠시나마 잊으셨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탁한 공기와 흐린 날씨 탓에 시야는 연일 뿌옇기만 했다.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동트기 전 하늘엔 여전히 탁한 어둠이 서려 있는 줄 알았다. 누나와의 대화창을 닫고 차 문을 열었을 즈음, 세상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한내공원에 서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오랜만에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푸른 빛깔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모친의 새벽하늘도 곧 환하게 걷히기를, 아직 차가운 공기 사이로 온기 묻은 봄바람을 기다려본다.


세상일은 참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저녁때 찾아간 본가에서는 아침에 느낀 청명함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난 주말 대부도 나들이 때만 해도 허리가 안정을 찾아가는 줄 알았는데, 나는 무던함에 기대어 안심했는지도 모른다. 오늘 본가 문을 열자마자 누워 계시던 부친이 자세를 바꿔 앉으며 한숨 섞인 말씀을 뱉으셨다.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모친께 여쭤보니 물컵을 들고 걷다 다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으셨단다. 겨우 붙어가던 척추뼈가 다시 충격을 받았을 터였다. 지난 몇 달간 부모님과 우리 남매가 쏟았던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가슴이 턱 막혔다.


우주의 질서가 달라질 만큼 대단한 것을 바란 적도 없다. 부모님께 대단한 호사를 누리게 해달라고 빌어본 적도 없다. 그저 남들 다 사는 평온한 일상을 조금만 더 붙들고 싶었을 뿐인데, 삶은 그 소박한 바람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뭐 하나 예상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마음은 살짝만 건드려도 와장창 깨져버릴 것 같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다. 아침의 청명했던 푸른 하늘은 어디로 갔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해가 진 어두운 흙빛이었다. 하늘에는 반쪽이 된 달과 어렴풋한 별 다섯 개만이 희미한 존재감을 비추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둠에 먹혀 사라질 것 같은 위태로운 빛이었다.



2월 27일

퇴직 후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않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명함이 사라져 위축된 마음도 있지만, 현실적인 비용 문제도 크다. 누군가를 먼저 만나자고 할 때 밥 한 끼 살 형편은 넉넉지 않고, 그렇다고 매번 얻어먹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아 부담스럽다. 결국 먼저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J선배는 사회생활을 가장 오래 함께한, 내게는 가장 가까운 사이다. 스스럼없는 사이지만 퇴직 후엔 그에게도 선뜻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그도 백수 신분이지만 내 형편을 배려해 매번 밥을 사려하니,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 선배가 얼마 전 먼저 연락을 해왔다. 오랜만에 한번 저녁이나 먹자고.


선배가 데려간 곳은 삼겹살과 김치찌개가 기가 막히다는 고깃집이었다. 가게 입구 양옆으로 대기 손님을 위해 두툼한 담요가 깔린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추운 날 밖에서 기다릴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보였다. 입구를 들어서니 90년대 포장마차 느낌의 포스터가 빼곡한 벽면과 귀에 익은 옛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제법 낭만 있는 분위기와 친절한 점원들까지,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었지만 10개 남짓한 테이블이 곧 가득 찰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근황을 나누던 중 소주가 나왔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찬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왼쪽 어금니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잔을 한 번에 비우는 대신, 조금씩 여러 모금으로 나누어 넘겼다. 단번에 넘길 때보다 독한 쓴맛이 입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우리는 아이 이야기와 각자 준비하는 일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언젠가 다시 함께 일할 날을 기약하며, 입안 가득 씁쓸한 현실을 음미했다.


사람을 만날 때 한 번 얻어먹으면 한 번 사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배웠다. 밥을 얻어먹으면 커피를 사고, 1차를 얻어먹으면 2차를 사는 식의 주고받음이 내게는 당연한 예의였다. 고기를 얻어먹었으니 보통은 맥주 한 잔 정도 내가 사는 것이 순리였겠지만, 최근의 나는 그 순리를 따르지 못한다. 매번 선배가 값을 치르니, 이제는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목구멍에 부담이 먼저 걸린다. J선배는 나보다 형편이 조금 낫다지만 그 역시 백수다. 선배는 파파이스에서 맥주를 판다며 가볍게 2차를 제안했지만, 나는 그냥 가자며 손사래를 쳤다. 시린 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지갑을 열기도 선배에게 다시 신세를 지기도 부담이었다.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더 이상 얻어먹기 민망한 마음이 뒤섞인 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2차는 뒤로한 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은 내 마음만큼이나 빈틈없는 만원이었다. 이것도 재수라면 재수일까,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린 덕분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나를 격려하던 선배. 몽롱한 정신에 고깃집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땠을까. 아마 내 마음처럼 짙은 흙빛이었을 터다. 내뱉은 말들조차 온통 어두운 일상뿐이었으니, 밝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삶은 때로 한 번에 삼키기 힘든 고통을 잔 가득 채워 건네곤 한다. 아픈 이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안주를 씹듯, 우리는 이 쓰디쓴 일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삼켜낸다. 소주가 유독 썼던 건 차가운 술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섞인 가장의 무게와 아픈 부모를 둔 아들의 무력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옷깃에 밴 고기 냄새와 입안의 쓴맛은 여전히 은은하게 남아 몽롱한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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