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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내 문제를 알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틀렸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by 케빈은마흔여덟

[충고는 모험을 가로막고 안이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을 띤다. 충고에 의해 우리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자주 놓쳤다.]

- 나를 뺀 세상의 전부/ 김소연


“도대체 아무리 다시 풀어도 어디가 틀린 건지 모르겠어.”

“아빠! 답이 똑같이 나오는데, 엄마는 계속 틀렸대.”

“네가 푼 거 있으면 가져오고, 없으면 여기서 다시 풀어봐.”


아이가 다시 푼 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틀렸는지 금방 보인다. 내가 더 많이 알아서라기보다, 나는 그 문제에서 한 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뭐야~ 틀리면 안 되는 데서 틀렸잖아.”

“잉? 어디? 다시 줘봐.”


자신의 실수를 마주한 아이는 당황스러워한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회사에서 몇 번이나 수정하고 검토한 보고서도 결재만 올리면 오타가 보이고, 완성했다고 믿은 글도 며칠 지나 다시 보면 논리가 어색하거나 문장이 엉성하다.


왜 자신이 만든 것에서 오류를 찾기 어려울까?


사실 단순하지 않다. 보고서나 글뿐 아니라, 삶에서도 자신의 오류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잘못된 습관, 비효율적인 방식, 관계에서의 반복된 실수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건 실수를 직면하는 데에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하면 고쳐야 하고, 변화해야 하고, 때로는 자존심도 내려놔야 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 자신이 만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다. 게다가 익숙함은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다 보면 오류가 눈에 띄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익숙한 방식으로 살아갈수록 문제를 감지하는 감각도 무뎌진다.


하지만 성장하려면, 스스로의 오류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거리 두기다.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나고, 외부의 시선이나 피드백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가 새로운 시각을 연다. 한 발짝 떨어져 나를 바라볼 때, 변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오류를 발견한 ‘그 이후의 태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틀릴 리 없다며 확신한다. 엘리트 의식에 갇혀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고정관념 속에 갇혀 변화 자체를 거부한다.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며 지적을 불편해한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지적을 받으면 위축되거나 상처를 받는다. 자기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끼며 움츠러든다.


예전에 이직해 들어간 부서에서 겪은 일이다.

기존 직원 한 명이 있었고, 나는 그 직원보다 높은 직급으로 들어갔다. 내가 맡은 상품을 개선하려 하자, 그 직원은 뭐든 “안 된다”라고 말하고 필요한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원래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일은 회사에서 종종 일어난다.

관행을 따르고, 자신만 정답이라고 믿으며,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고집을 부린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깎아먹는다는 걸 모른 채 부족한 부분을 감추려 한다. 그러면서 지적 앞에서는 움츠러든다.


그런데 태도에 정답이 있을까. 딸아이가 틀렸던 수학문제처럼 명확한 실수는 그냥 인정하면 된다. 지적이 일리 있다고 느껴진다면 고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말이 옳다고 느껴진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모든 피드백을 다 수용할 필요도 없지만, 중요한 건 그 판단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기대했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릴 땐 기대에 부응하려 하지만, 점차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이때, 나를 몰아붙이며 성장할 수도 있지만, 과하면 부러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그것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


주변의 기대를 다 충족할 필요도 없다. 부족하면 노력하면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다.


실수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기회다. 아이가 문제를 틀렸을 때 아빠가 도와주듯, 삶의 오류도 스스로 혹은 타인의 도움으로 고쳐나가면 된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고치려는 태도다.

오늘의 틀린 답은 내일의 해답을 위한 발판이다. 자책보다 성장으로,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대면하는 것. 그것이 진짜 나를 위한 태도 아닐까.


#딴엔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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