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망설이긴 짧고, 조바심 내기엔 길다

- 청춘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다

by 케빈은마흔여덟

[삶이 내 뒷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여기는 청춘들께, 루쉰의 독백을 전하는 것으로 이 허접한 소개를 접는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인터뷰특강 청춘/ 강풀 외 5명


늦은 감이 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다. 호흡이 길고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매번 같은 페이지를 반복하다가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책 몇 권쯤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스스로를 다그치며 책을 펼쳤다.

그러나 내 감성은 아직 무딘가 보다.

'와~ 대단하다'

시적인 문장들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지만, 정작 깊이 몰입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현장감과 분위기를 충분히 느꼈으니 절반은 성공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언젠가 더 적절한 시기에 다시 읽기로 마음먹고 책을 덮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미디어에 자주 언급되는 한 문장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엊그제 한 방송에서도 이 문장이 인용됐다. 진행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현재도 언젠가는 과거가 된다. 그러니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참으로 공감 가는 말이었다. 문득, 나는 지금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됐다.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다고 여겼지만, 돌아보면 이룬 게 많지 않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뭘 해도 안 될지 몰라'라는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남들 따라가던 길에서 벗어나 뒤늦게 선택한 또 다른 길.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바심은 커진다.


어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오랜 당뇨와 뇌경색 후유증으로 검사도, 진료도, 약도 많았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두 개의 진료과목, 예약, 수납, 약 수령까지 마치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런 절차를 노인들이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진료비는 크지 않았지만, 각종 검사비와 약값까지 합치니 60만 원이 넘었다. 아플 권리조차 경제력과 직결되는 현실. 아들이면서도 이 병원비를 선뜻 내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내내 푸념하셨다.

"내가 너희한테 미안하다."

"잘살도록 해 준 것도 없고, 이렇게 아파서 미안하다."

"마음은 청춘인데 벌써 80이 넘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


어두운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문득 시골에 계신 고모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치료를 받고 퇴원한 직후, 고모님은 전화를 걸어 다소 충격적인 안부 인사를 건넸다.

"너 아직 어리니까 금방 좋아질 거야."

아흔이 넘은 고모님이 팔순을 넘은 동생을 향해 한 말이었다.

노인이 다 된 부친에게 "어리니까"라니

우리 가족은 그 말을 들으며 모두 웃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으로 웃기다. 차 안에 있던 어머니, 나, 그리고 아버지도 그 순간을 떠올리며 웃었다.


청춘이란 무엇일까.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 “청춘은 지금부터다”, “청춘은 따로 있지 않다”는 말들이 농담처럼 오간다. 하지만 그 안에는 눈에 띄는 의미가 숨어 있다.


사전에 따르면 청춘은 ‘10대 후반부터 20대에 걸친 젊은 시기’를 의미하지만, 본래 ‘봄철’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청춘은 단순히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때를 말하는 건 아닐까.


나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시작을 미뤄왔다. 뒤처질까 봐 초조했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현재에만 집착했다. 새로운 도전은 사치처럼 느껴졌고, “나이 먹고 그걸 언제 배우냐”며 합리화했다. 하지만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는 결국 뒤에 찾아오고, 조바심만 키웠다.


돌이켜보면,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학창 시절의 후회를 떠올렸고, 30대에는 20대의 여유를, 40대에는 30대의 핑계를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50대가 되면 40대를, 60대가 돼도 결국 50대를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뻔한 말 같지만, 언제나 ‘지금’이 가장 좋은 시작의 순간이었다.


아흔이 넘은 고모님이 80대인 아버지를 ‘어리다’고 말했듯, 지금의 나도 언젠가 “그땐 젊었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시작은 때가 없고 청춘이란 말도 각자가 정하기 나름이지 싶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는 말처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미래의 내가 오늘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그냥 시작하면 된다.


삶은 망설이기엔 너무 짧고, 조바심 내기에는 생각보다 길다.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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