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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서로의 기억을 돕는 품앗이

- 삶은 기억이라는 퍼즐을 맞춰가는 여행

by 케빈은마흔여덟

[생각해 보니 우리는 어른이기도 하고 아이 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삶이 그러했고 내 삶이 그렇게 닮아 가고 있다. 내가 앞으로도 좀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오로지 내가 경험한 아이들의 세상, 그들의 반짝이는 마음 덕분이다. 우리 모두는 아이였다. 누구나 아이였다.]

- 어쩌면 동심이 당신을 구원할지도 / 임정희


요즘 부친의 기억이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이, 가족의 일상도 점점 혼돈스러워지고 있다.

복용하는 약의 영향도 있겠지만, 지친 뇌가 휴식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본가에 가면 부친은 대부분 주무시고 계신다. 잠에 취한 채 현실과 꿈을 오가며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당황한 내게 모친은 조용히 이해하라는 눈빛을 보내곤 한다.


우리의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때 감각을 활용한다. 하지만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 부친에게는 미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 무뎌진 감각으로는 현실과 상상을 또렷이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몽롱한 현실과 생생한 꿈 사이를 자주 오가신다.


기억은 흐려졌지만, 젊은 시절의 장면들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는 듯하다.

수없이 들어 익숙한 젊은 시절 이야기는 레퍼토리처럼 반복된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는 새벽에 택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계속되더니, 최근에는 돈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그래도 돈을 제법 많이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돈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늙으면 귀인이 도와준다고 하더니, 그런 것도 없고 답답하다.”


그러더니 엊그제 버린 장식장 서랍에 돈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걸 확인도 안 하고 버렸다고 닦달하셨다. 모친은 한숨을 쉬며 답답해하신다.


“버리기 전에 서랍 안을 다 확인했어.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어쩌라고.”


다행인 것은 모친이 곁에서 대화를 나눠 주신다는 점이지만 또 걱정스러운 건 모친의 건강이다. 아직 중증은 아니지만, 치매 가족을 돌보는 사람도 병이 든다는 말이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기억은 때로 포장되거나 왜곡되어, 사실과 다르게 남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기억은 사실의 영역이라기보다 해석의 영역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가끔 딸아이에게 “어릴 적 언제까지 기억나?”라고 물어보면, 대답이 매번 다르다.

어느 날은 “엄마 뱃속이 기억나.” 하더니, 또 어느 날은 “갓 태어나서 엄마랑 누워 있던 게 기억나.”라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 유치원 시절조차 가물가물한 걸 보면, 정말 기억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단정 짓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며, 우리 부부는 종종 추억을 들려주곤 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가 사랑한다고 했었어.”

그러면 아빠 목소리에 꿈틀대던 너.

네가 태어난 순간, 사실 엄마는 마취 때문에 기억이 거의 없었고, 아빠는 너무 당황했었지.

당황한 채로 허겁지겁 너와 병원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가 생각나

그리고 마취에서 덜 깬 엄마가 처음 한 말은, “우리 아기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였다.


아마도 아이의 기억은, 이런 이야기들과 머릿속의 상상, 그리고 몸 깊숙이 새겨진 감각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렇다. 어린 시절 기억은 대부분 부모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와 사진을 통해 형성된 것 같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기억 속 조각난 이미지를 맞춰 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퍼즐 조각과,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은 대화 속에서 채워진다. 그렇게 하나씩 맞춰진 기억은 가족이 되고, 사회가 되고, 세상을 만든다.


아내와 나는 동갑이다.

비교적 젊게 살지만, 50년 가까이 살아온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동하고, 서로 다독이지 않으면 노화는 비켜가지 않는다. 이제는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대화 중 사람 이름이나 명칭이 떠오르지 않아 뜸을 들이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오래 알고 지냈고 함께 보낸 세월이 길다는 점이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며 쌓아온 공감대 덕분에, 말이 막히더라도 금세 알아듣고 서로의 기억을 보완해 준다.


부모님의 대화에도 가끔 이런 말이 오간다.

“저기에서 거기 하면 그거 한다.”

사투리일 수도 있지만, 노화로 인해 “저기”, “거기”, “거시기” 같은 대명사로 이루어진 말들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모친은 희한하게도 그 말을 척척 알아듣고 대꾸해 주신다.


인간의 뇌는 진화를 거듭하며 커졌지만, 집단 지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소폭 작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문자가 생기고, 대화를 통해 정보를 나누면서, 개개인은 특정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결국 대화는 서로를 보완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뜻이기도 하다.


희미했던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이 부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선명해지듯, 부모님의 기억도 조부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다듬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아이도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공유하며, 조각난 기억을 함께 맞춰 간다.


삶은 그렇게 기억이라는 퍼즐을 맞춰 가는 여행이다.

비록 시간이 흐르며 기억은 흐릿해지고 감각은 무뎌지지만, 대화는 그 흐름 속에서 우리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되어 준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각난 기억을 이어 붙이며, 새로운 추억과 의미를 만들어 간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의 힘이 되어 노화의 불가피함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지켜낸다.

결국 대화는 단순한 말의 교환이 아니라, 함께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서로를 돕는 따뜻한 품앗이가 아닐까.


딸아, 네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 정말 사실일까?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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