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지키되, 선택은 유연하게
[나이가 들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절대', '결코', '영원히'라는 말들을 어렸을 때처럼 쉽게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삶을 단정하거나 함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고,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에는 이면이 있으므로]
- 우리 먹으면서 얘기해요 / 성수선
논리와 모순에 대해 고민하며 써 놓은 글들을 다시 읽다 보면, 간혹 다른 글과 충돌되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틀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서로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둘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구분되어야 할 문제였다.
“딸아, 밤에는 목소리를 조금 줄여줄 수 있을까?”
“9시가 넘으면 자는 집도 있으니까, 우리도 어두워지면 목소리를 낮추자.”
공부 때문에 실랑이를 하다 보니 목소리가 높아졌다. 유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도, 아내도 목소리가 큰 편이다 보니 딸아이 목소리도 당연히 크다. 공동주택에서는 소리칠 자유보다는 타인의 평온을 우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컸다. 전화로만 통화하던 고객이 처음 나를 보면, 작고 마른 체구에 놀라곤 했다. 목청이 크기 때문인지, 전달력은 좋았고 영업부서에선 분위기를 띄우는 데도 한몫했다.
하지만 종종 “목소리를 좀 줄일 수 없냐”는 얘기를 들었다. 위화감을 준다거나, 통화 소리가 거슬린다는 지적이었다. 그때부터 목소리를 의식하게 되었고, 통화도 밖에서 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하다 보니, 오히려 내가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신경 써야 할 건 말의 내용인데, 나는 목소리 크기만 신경 쓰고 있었다.
물론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는 중요하다. 내가 말할 권리가 있듯, 상대방에겐 조용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떠든 게 아니라, 고객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의사 전달력이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양해를 구하고, 그 외에는 내 본연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자 나도 편했고, 일도 더 잘 풀렸다.
나는 원래 목소리가 크다.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 ‘나를 잃지 않는다’는 건, 이런 걸 뜻한다. 반면 내가 원래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 예컨대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야” 같은 말은 본질이라기보다, 한때의 선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글쓰기를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우울증 극복에 도움 된 책들을 정리해 추천하려 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책은 추천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골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애초에 하려던 ‘추천’과 모순되는 말이었다. 결국, 계획을 바꾸고 글을 새로 썼다. 처음 생각이 틀렸다면, 계획을 바꾸는 게 더 맞는 선택이다.
우리는 자주 ‘원래’, ‘처음부터’, ‘애당초’라는 말에 붙들린다.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걸까?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아.” 이건 내 본질일 수 있다.
“나는 원래 아침형 인간이 아니야.” 이건 단지 습관이나 선택의 문제다.
이처럼 어떤 선택은 내 의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 본질은 지켜야 하지만, 선택은 유연하게 열어둘 필요가 있다.
한때는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길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그래왔던 것’에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 선택이 반복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면,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를 내보는 것도 괜찮다.
목소리가 크다, 아침잠이 많다, 소음에 민감하다. 이런 건 쉽게 바뀌지 않는 나의 본질이다.
하지만
“나는 원래 새로운 걸 잘 못 해.”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게 편해.”
“나는 원래 변화가 싫어.”
이런 말은 바꿔볼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삶이 요구할 때, 또는 내가 그렇게 살고 싶을 때.
나를 잃지 않는다는 건 내 본연의 모습을 지키는 일이고,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건 내가 가진 선택의 폭을 좁히지 않는 일이다.
때로는 ‘원래’라는 말 뒤에 숨지 말자.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열어두자.
그 작은 차이가 삶의 유연함을 만들고, 나를 더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딸아, 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그 선택은 네 몫이야.
우리는 네가 노력하는 모습을 응원하지만, 결국 네 인생을 결정하는 건 너 자신이란 걸 잘 알고 있어.
그리고 그 선택이 때로는 흔들릴지라도, 목소리가 크다며 투정을 부릴지라도,
네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사랑하고, 너의 치열한 선택을 언제나 응원해.
#딴엔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