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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Aug 26. 2021

아리 애스터가 다루는 <운명>.

미드소마(2019)

 <유전>, 그리고 <미드소마>. 단 두 작품으로 할리우드의 기대주로 급부상한 영화감독이 있다.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비틀고, 자신만의 개성을 끼얹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들은 거역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발버둥 치는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가족의 피와 얽혀있는 악마의 이야기를 다룬 <유전>으로 주목을 받은 아리 애스터 감독은 뒤이어 스웨덴의 축제에 상상력을 덧붙인 <미드소마>라는 영화를 가져온다. 가족을 잃은 대니와 그녀의 남자 친구 크리스티안이 호르가에서 겪는 기이한 축제로 보여주는 운명극인 <미드소마>는 아리 애스터의 개성이 두드러짐에 틀림없는 작품이다.

 한국영화 마니아로도 알려진 아리 애스터 감독은 한국영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장르의 뒤섞임을 꼽았다. 한 장르의 문법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면모를 가진 한국영화처럼,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들은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미드소마>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포영화의 배경이 되는 밤이 아닌, 낮을 중심으로 예측 불가능한 불안감을 연출한다. 예측 불가능함을 넘어서고 나면, 기시감만 남는다. 관객들로 하여금 맞닥뜨리기 싫은 예상을 주저 없이 걸어 들어가며 <미드소마>가 다루는 운명의 굴레에 초대한다.




 영화는 이들의 삶이 어떤지에 관심 없다. 정신병을 앓고 있던 동생이 자살할 때, 부모님이 함께 휘말려 한 순간에 가족을 모두 잃은 대니는 남자 친구인 크리스티안을 안고 눈물을 쏟는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들이 아닌 창밖의 눈을 비출 뿐이다. 영화는 그들의 운명과 순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는 수시로 그림을 등장시켜 인물들의 미래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5월의 여왕으로 선택되는 대니, 대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크리스티안, 그리고 호르가를 감싸는 신의 모습까지. 애초에 <미드소마>의 주인공인 대니는 호르가를 안타고니스트로 설정하지 않는다. 생명의 탄생과 이별을 순환으로 받아들이는 호르가의 문화는 대니에게 있어 고통을 치유해가는 과정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여타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인물들이 마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요하다. 호기롭게 축제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축제의 도구로써 역할을 다하게 되고, 마을의 번영을 위해 희생된다. 자연의 베풂에 보답하고, 질서를 위해 운명을 선택하는 이들의 모습은 거대한 인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에서 새로운 질서로 보답하는 호르가의 태도는 그들의 문화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죽은 나무에 조상들의 유골을 뿌리며 자연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사이먼의 죽음을 닭과 꽃에 바치며 신의 베풂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에 등장하는 호르가는 뒤틀린 자연관과 보편적인 윤리에 대치되는 모습을 보이며 관객들을 자극한다. 

 공포를 연출하는 데에 있어 낮을 배경으로 삼는다는 것은 굉장히 도발적이다. 어둠으로부터 가려진 곳이 없지만, 반대로 빛을 어둠으로 삼는다면 도망칠 곳이 없다는 의미로 완성된다. 영화의 시간을 낮이 가장 긴 하지로 설정한 것은 인물들에게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전통이 가장 힘을 발휘하는 시간임을 이야기한다. 계절적으로 겨울에 해당하는 노인들이 호르가의 후손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듯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스스로 생의 매듭을 짓는 것을 신성시하는 행동이며 빛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태도다.

 하지만 <미드소마>를 이끄는 주인공인 대니는 그들과 다르다. 대니의 꿈이 이야기하듯, 대니의 무의식은 동생의 자살에 휘말린 부모님의 죽음과 호르가 전통에 따라 절벽에서 몸을 던진 두 노인의 모습을 겹친다. 호르가의 전통에서 자신의 희미한 운명을 발견한 대니는 5월의 여왕에 도전하며 호르가에 천천히 몸을 맡긴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호르가로부터 다른 운명을 맞은 것은 태도에 있다. 크리스티안은 호르가의 여인 마야에게 마을을 유지시키기 위한 외부의 도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근친상간을 통해 예언가를 만들어내고, 외부의 제물을 끌어오는 호르가의 광기는 치밀하기에 더 몸서리쳐진다. 크리스티안은 호르가의 도구로 쓰였지만, 반대로 대니는 호르가를 도구로 사용한 인물이다. 그들의 축제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5월의 여왕으로 선택된 대니는 도리어 제물들을 선택하며 내적 갈등을 모두 해소한다. 지지 않을 것 같이 활짝 핀 꽃들에 둘러싸인 대니는 제물과 함께 불타오르는 성전을 보며 끝내 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 영화의 기이한 문법은 흥미로운 소재를 동반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단편영화 <뮌하우젠>, <더 스트레인지 띵 어바웃 더 존슨즈> 등을 함께 감상한다면, 영화를 구성하는 그의 독특한 접근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집착과 관계로 형성된 공포와 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들은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상정한 생의 규정을 해체해 고통으로 재조립한다. 재조립된 생의 구조를 필연으로 그려내는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인상과 힘이 느껴진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단편영화 중 하나였던 <보>가 장편영화로 각색되어 제작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호아킨 피닉스를 비롯해 메릴 스트립까지 출연을 확정 지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차기작이 얼마나 더 강렬해질지 기대를 안 할 수 없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영화를 통해 유도하는 운명 속으로, 그리고 그의 상상력이 재구성한 세상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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