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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Mar 28. 2021

미셸 공드리가 다루는 <환상>.

무드 인디고 (2013)

  <이터널 선샤인>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이 프랑스 감독은 사실 뮤직비디오에서 시작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움직이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 같다. 가장 창의적인 감독들 중 한 명인 미셸 공드리 감독의 작품들은 비현실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비현실들이 사실 환상적인 은유들임을 알 수 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어떤 영화든 잠시만 감상해도 그의 작품임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개성과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다프트 펑크, 케미컬 브라더스 등의 유럽의 대표적인 뮤지션들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주목을 받게 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상상력은 영화에서도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최근에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함께했던 배우인 짐 캐리와 드라마 <키딩>을 연출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들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누가 뭐라 해도 <이터널 선샤인>이겠지만, 그의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이 글에서도 다룰 <무드 인디고>라고 생각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 영화 속에 담긴 환상적인 세상은 낭만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냉혹한 현실의 모습을 특유의 연출로 비유해낸다. 그의 영화 <무드 인디고>는 그가 펼쳐 보인 환상들이 어떻게 인간사를 담아내는지를 설명한다.




  정말 환상적인 세상이다. 뱀장어가 수도꼭지를 넘나들고, 피아노가 칵테일을 제조하는 세상을 본 적 있는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가 특별한 점은 발상보다는 표현에 있다. 그의 상상력에는 스톱모션과 미니어처, 원근법은 기본이다.  재치 있는 소품들은 총동원하여 끝없이 열거되는 <무드 인디고>는 주인공인 콜랭과 클로에의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영화에 담긴 환상들은 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인물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은유다. 사실 이 작품에서 환상을 걷어내면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혼생활에 들어갈 돈을 걱정하며 청혼을 고민하는 남성, 갑자기 닥친 배우자의 병환, 가난 때문에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는 장례식까지 그가 다루는 환상에 얽혀있다.

  환상의 기원은 인물의 감정이다. 집을 찾아온 시크와 악수를 나누는 콜랭의 손은 회전하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파티에 온 사람들은 비글무아 춤을 출 때 다리가 길어지며 흥겨움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첫 데이트를 하는 콜랭과 클로에는 날아갈 것 같은 설렘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으며 주저 없이 실행에 옮긴다. 영화를 이끄는 개연성은 철저히 현실이 차지하는 자리 대신에 인물들의 감정을 따르고 있다.

  다채로운 색이 지니고 있던 영화는 콜랭과 클로에의 신혼여행부터 서서히 잿빛으로 바뀌어간다. 잠에 든 클로에의 입으로 들어간 눈송이는 폐 속에서 수련이 자라나게 해서 클로에를 죽어가게 만든다. 콜랭은 클로에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 점점 자신의 돈이 줄어감을 느끼자, 일자리를 알아본다. 그러나 험난한 노동환경에 콜랭은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깨닫는다. 콜랭과 함께 클로에를 돌보는 니콜라마저 클로에를 향한 걱정에 눈에 띄게 늙고 만다. 한 사람의 병환은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미셸 공드리 감독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콜랭이 일을 하게 되는 공장은 무기를 제작하고 있다. 양성자 총이라고 불리는 무기를 만들려면 인간의 체온이 필요해서, 콜랭은 오랜 시간 무기의 씨앗을 묻은 흙에 몸을 감싸고 있어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위해 인간의 체온을 빌려야 하는 공장의 시스템은 콜랭의 생기를 빼앗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쳐버린 콜랭의 몸에선 충분한 체온마저 나오지 못해, 불량품만 생산되고 만다. 공장의 감독관은 콜랭에게 돈을 많이 벌어도 몸을 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자조적인 조언은 이 영화가 인생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인물들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삶에 지쳐가는 콜랭과 클로에를 따라 색을 잃어가고 있다. 극이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듯이 말이다. 멈출 줄 모르는 클로에의 치료비에 콜랭은 자신의 사랑하는 발명품인 칵테일 피아노까지 팔아버린다.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지킬 수 없는 콜랭은 하나씩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릴 수밖에 없다.

  애인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콜랭과 달리, 꿈을 위해 애인을 포기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콜랭의 친구인 시크다. 시크는 철학가 장 솔 파르트르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와 관련된 물건이라면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인물이다. 수집품을 사기 위해 청혼도 미루고 전재산마저 바쳐버린 시크는 결국 외롭게 죽고 만다. 홀로 남아버린 시크의 애인인 알리즈는 그를 죽게 만든 파르트르를 총살하고 만다. 비록 시크는 죽었지만, 죽은 뒤에도 그가 사랑했던 존재들은 서로를 위협하며 힘을 잃는다. 결국 꿈과 애인을 모두 잃게 된 시크처럼, 콜랭도 그와 같이 끝내 클로에를 떠나보내는 운명을 따르게 된다.

  그녀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마저 치를 수 없게 된 콜랭은 물가에 떠오른 수련에 총을 난사한다. 클로에를 죽게 만든 수련은 버젓이 떠나지 않고 그의 주위를 맴돈다. 하지만 그의 부족한 체온으로 완성된 불량 양성자 총은 그런 수련을 빗맞힐 뿐이다. 수련은 화려함과 시련이 모두 담긴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인연에 대해 씁쓸하게 그리는 미셸 공드리의 <무드 인디고>는 그렇게 환상을 빌려 인생에 대한 고찰을 남긴다.




    현실에서 환상을 집어내어 꽃 피우는 미셸 공드리의 영화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살아가며 찬란하게 기억될 순간들을 영화를 통해 기적처럼 담아내는 그의 영화는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가 초대하는 세상으로, 그가 이끄는 무드에 따라 비글무아 춤을 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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