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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Mar 21. 2021

마틴 스콜세지가 다루는 <몰락>.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

  내가 영화감독들이 다루는 소재들을 주제로 글을 쓰지만, 어디까지나 그 소재들은 감독들이 다루는 수많은 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오늘도 중심으로 글을 펼칠 <몰락>이라는 요소 또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들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특히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미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누군가 미국 영화를 설명할 때에 그를 빼놓고 이야기한다면, 미국 영화를 제대로 모르거나 혹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생략한 것임에 틀림없다. 1970년대 할리우드 악동 세대로서 미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코미디의 왕> 등의 명작들을 쏟아낸 뒤에도,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 끝없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최고의 감독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은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국가의 영화들을 복원하는 데에도 향해 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의 복원에도 그의 도움이 있었을 정도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큰 감독이기도 하다.  

  <분노의 주먹>,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에서는 몰락이 플롯에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전개 내내 몰락을 암시하고, 몰락을 통해 주제의식과 캐릭터를 끌고 나가면서 때론 풍자를, 때론 회의를 남기며 극을 맺는다. 사실 몰락은 그의 전매특허는커녕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인류사를 꿰뚫는 통찰을 내재하는 소재다. 이 글에서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주인공인 조던 벨포트의 몰락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는지를 따라가려 한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실제 인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 데다, 그 인물이 작품 안에서 등장하기도 하니 궁금한 사람은 더 찾아봐도 재밌을 것이다.




  조던 벨포트는 몰락을 몸소 보여주며 권선징악의 일인극을 완성시킨다. 초반부터 조던 벨포트는 대놓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화려한 언변으로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증명한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 조던 벨포트가 어떻게 스트래튼 오크먼트라는 회사를 세우게 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다. 주식 중개인으로서 증권가에 갓 입성한 조던 벨포트는 선임 마크 헤너를 만난다. 조던 벨포트는 마크 헤너에게서 월스트리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듣는다. 그는 마약과 여자,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제정신을 잃어야 하는 월스트리트의 필수 요소를 설명하며 함께 고객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식 시장은 허상임을 강조하며, 주식이 올랐다고 고객에게 그 허상을 현실로 쥐게 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거래 수수료로 수익을 얻는 중개인으로서는 그 돈을 다른 곳에 다시 투자할 수 있도록 묶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마크 헤너가 조던 벨포트에게 해주는 조언은 이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들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마크 헤너가 이야기하는 허상과 고객이 그 허상에 계속 묶여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곧 조던 벨포트와 돈의 관계를 보여주는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마크 헤너의 입을 빌려 마약과 여자, 그리고 돈이 어떻게 조던 벨포트를 현실로 돌려보내지 않는지를 설명하려 하는 것이다.

  이미 조던 벨포트는 극 중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마약으로 돈을 꼽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조던 벨포트가 마약과 여자만큼 돈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는 그는 돈을 지키기 위해 마약과 여자를 이용한다. 그는 돈이 있으면 예쁜 여자, 강력한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돈을 벌기 위해 모았던 동료들도 마약상이었던 데에다 돈을 포기하지 못해서 사랑하는 가족마저 잃은 인물이다. 마크 헤너의 조언대로 그는 인생을 월스트리트 그 자체로 살며, 돈을 벌기 위해 마약과 여자로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철옹성 같은 조던 벨포트의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인물이 있다. 그의 급격한 성장을 눈여겨본 FBI 요원 페트릭 데넘은 조던 벨포트에게 접근한다. 조던 벨포트는 페트릭에게 감언이설을 늘여놓지만, 꾐에 넘어가지 않은 그에게 평생 지하철이나 타라며 분노를 퍼붓는다. 결국은 몰락해버린 조던 벨포트로부터 승리를 거머쥔 것은 페트릭 데넘이었지만, 지하철에서 건너편에 앉은 노부부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던 그에게서 진정한 승리는 돈의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던 벨포트는 더 큰 허상에 묶여있다. 현실로 돌아올 기회가 수없이 있었음에도 돌아올 수 없었던 조던 벨포트는 허상과 현실을 분간조차 하지 못하는 늑대가 되어버렸다.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인간성마저 돈을 위해 잃어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대중의 동경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돈이 가져오는 파멸을 알면서도 좇게 만드는 것이 돈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돈을 마약과 여자보다 우선으로 두면서 돈이 가진 중독성을 경고하고 있다. 감옥에서 나온 뒤에도 조던 벨포트가 진행하는 세미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이미 우리는 돈에 중독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돈을 만져본 사람이라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거칠고 과격한 세계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인간의 심리를 깊게 그려낸다. 그의 영화들은 열등감과 탐욕, 분노를 다루며 인간의 나약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영화들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원하는 늑대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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