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큼 아이들의 모습을 잘 포착하는 영화감독이 있을까? 있다 할지라도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저서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한 것>을 보면 그가 영화를 만들 때 무엇을 고민하는 감독인지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그가 영화를 시작하게 되는 과정부터, 일본 영화감독으로서 일본 영화산업에 가지는 비판의식 등이 돋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일본 영화사를 빛냈지만, 정작 그것이 일본의 산업구조와 지지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90년대부터 시작한 일본 영화의 제작위원회 시스템은 일본 영화산업의 침체기를 불러일으킨 강력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영화가 제작위원회의 손을 거치는데, 영화사, 방송국, 광고회사 등이 모여 사전에 계약을 체결한 뒤에 영화 제작에 착수한다. 이러한 과정은 보다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고 영화가 실패했을 경우의 피해를 분산시킨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영화 같은 안정적인 수입이 예상되는 영화들에 투자가 집중됐고 일본 영화는 찬란했던 과거와는 달리 폐쇄적인 구조를 갖게 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경우에도 폐쇄적인 일본 영화의 산업구조에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입장이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부터 한국에서 제작된다고 하는 <브로커>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 영화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루게 될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칼날은 일본 사회가 미처 감싸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향해 있다. 그중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고, 아이가 아이다울 수 없는 사회를 말하고 있다. 약자의 편에 선 영화들 중에서도 아이들을 다루는 영화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들이 미래의 주역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의 사회는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그리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이자 과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겪는 어른들의 부재로 인한 고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심각한 문제의식을 유도할 수 있다. 뿔뿔이 흩어질까 두려워 사회복지기관의 도움을 배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가족의 의미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복지가 복지다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절망으로 작용한다. '엄마'와 함께 지내는 아키라, 교코, 시게루, 유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아이로서 마땅한 학생으로의 자격조차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들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상처를 동반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써도 부족할 물을 식물들에게 나누어 주며, 언젠가 만개할 꽃을 기다린다.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기도 한 아키라는 어른의 눈빛을 담고 있다. 애인이 만든 카드빚을 갚아야 한다면서도 파칭코점에 머무르고 있는 아키라의 아버지는 어른임에도 어른처럼 묘사되지 않는다. 자신이 보살피지도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동전을 빌리는 모습으로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어른들의 미숙함을 포착해낸다. 이러한 점에서 '엄마'가 떠난 뒤, 부모의 역할을 대신해야만 했던 아키라의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를 보다 더 명확하게 한다.
중반부부터 극 중에 등장하는 사키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사키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의 일환으로써 장례식을 치른다. 그렇게 사키는 사회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아무도 모르는 아이들에 합류한다. 사키라는 캐릭터가 이 극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사키에 의해 사회에서 지워진 이들의 연대가 묘사되기 때문이다. 사키는 아무도 몰라주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지키려고 하는 인물이다.
집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행동을 최대한 제한하며 생활한다. 시게루가 갖고 놀던 장난감이 베란다 멀리 굴러갔지만,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장난감을 포기하고 만다. 돈을 모아 피아노를 사겠다던 교코도 지쳐가는 아키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피아노를 위해 모으던 돈을 포기하려까지 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유키는 수입이 끊긴 뒤로 종이를 구하지 못해 닳고 닳은 크레파스로 컵라면 용기에 그림을 그린다. 궁지에 몰린 아이들은 그들을 지탱해주던 작은 꿈들을 포기했고, 그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약했던 유키가 결국은 끝내 눈을 감는다. 어쩌면 닳을 대로 닳아버린 크레파스들은 유키의 얼마 남지 않은 여력을 표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떠난 유키는 이사 왔을 때 들어가 있던 캐리어에 다시 들어가 공항 활주로에 묻힌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상으로부터 잊힌 채로 남는다. 유키가 마지막 남은 초콜릿을 입에 털어 넣으며 활짝 웃던 모습을 기억하는 아키라는 그저 유키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공항에 묻어주며 비행기와 함께 유키를 떠나보낸다. 유키의 빈자리는 사키가 대신하며, 새로운 연대의 출발을 암시하는 동시에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들꽃처럼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들에는 항상 아이들이 함께한다. 그는 가족을 이루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앞으로의 미래, 때로는 퇴장을 표현하며 서로의 삶을 잇는 가치들을 강조한다. 그의 영화가 담은 일본 사회의 모습은 미숙함과 희망을 내재하고 있으며,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를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있다. 우리가 그의 영화에서 발견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앞으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