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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Mar 18. 2021

 봉준호가 다루는 <계급>.

설국열차(2013)

  

  영화 <설국열차>는 상징을 좋아하는 봉준호 감독의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봉준호 감독은 계급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는 감독이다. <기생충>으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뒤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수많은 분석과 연구가 쏟아졌지만, 우리는 그의 이전 작품들로부터 어떻게 그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졌는지를 엿볼 수 있다. 나는 그의 이전 작품들 중, 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기도 한 <설국열차>로 그가 계급을 영화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계급은 겉보기에 본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서로를 구분 지으려는 욕구'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는 다양한 사상과 종교, 정치학, 경제 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합리화와 파괴를 겪어왔다. 과거에 비해 신분제 사회를 보기 힘들어진 지금, 계급은 일종의 버려야 할 과거의 잔재로써 여겨지고 있다. 그 일례로써 관료제 중심의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들과 기존의 질서에서 혁신을 이루려는 기업들의 시도들에서 희미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계급사회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계를 맞닥뜨린 인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본으로 구분 지어지는 새로운, 어쩌면 더 교묘해진 계급사회였다. 그러한 점에서 봉준호 감독은 그 교묘해진 '계급'을 깊고 날카롭게 파헤치는 스토리텔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봉준호의 작품들 중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그가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어떻게 현실의 모습을 이끌어내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설국열차>는 지구온난화에서 이야기를 뻗어나간다. 뜨거워진 지구의 온도를 통제하려는 인류의 시도로 인해 세상은 눈으로 뒤덮이게 되었고,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계급이라는 거대한 소재 밑에는 많은 소주제들이 있는데, 그중 '통제'와 '질서'라는 소주제를 다루려 한다. 인류는 태초부터 무질서에 싸워왔다. 대부분의 생물들과는 달리, 자연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저항이라는 태도를 결정한 시점부터 인류는 서로를 통제하고, 자연을 통제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질서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변수들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고, 통제 가능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으나 인류는 자신들이 불러일으킨 통제들을 도리어 당해왔다. 그것이 봉준호 감독이 계급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 중 하나일 것이다.

  무언가에 저항을 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왜' 저항을 해야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설국열차>의 경우, 꼬리칸 사람들을 향한 지도층의 무분별한 착취와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도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암시하는 대목은 커티스와 길리엄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엔진칸을 차지하고 난 뒤의 미래를 물어보는 길리엄에게 커티스는 그저 음식과 지도층의 죽음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것이 꼬리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풍요로움을 추구하고 분노를 이용하는 커티스의 모습은 머리칸의 사람들을 닮아간다. 각기 다른 명분이라고는 하나, 식수 칸 전투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료를 희생시키는 머리칸의 메이슨과 꼬리칸의 커티스가 보여주는 모습은 특히 노골적으로 닮아있도록 연출되고 있다. 이러한 저항이 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부분은 양끝에 위치한 꼬리칸과 머리칸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툴 뿐, 정작 그들 사이 중간에서 자리를 지키는 이들은 그 어떤 태도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위치에 안주하며 부품을 자처한다는 점에서 계급이라는 주제는 더욱 깊어지고, 다각화된다. 꼬리칸과 머리칸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가 더욱 선명해지는 동시에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메이슨이 작중에서 언급한 대로, 열차의 주인인 윌포드는 세대교체에 대해 무섭도록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세계가 얼어붙을 것을 예상하고, 종말에 가까운 상황에서 '설국열차'라는 새로운 질서를 가장 먼저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수족관으로 이루어진 칸에서 메이슨이 커티스 일행에게 초밥을 대접하며 설명했던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는 꼬리칸 사람들의 죽음은 물론이고, 머리칸 사람들의 죽음 역시 커다란 차원에서 세대교체임을 암시하고 있다. 에드가와 푸위, 길리엄과 메이슨으로 이어지는 머리칸과 꼬리칸 주요 인물들의 대칭적인 퇴장은 윌포드가 바라보는 생태계의 균형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커티스가 윌포드로부터 받은 제안에 대한 선택이 더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무엇이 커티스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느냐이다. 윌포드를 잇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열차의 벽을 파괴하여 새로운 질서로의 길을 택하게 만든 것은 과열된 질서 속에서 희생받는 미래세대였다. 질서라는 명목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던 아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이 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길리엄과 윌포드의 또 하나의 부품으로써의 삶을 거부한 커티스는 길리엄이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팔을 희생해 티미를 구해낸다. 커티스를 새로운 지도자로 만드려던 길리엄이 이런 커티스의 선택까지 예상했을지가 궁금해진다.



  

  인간의 과도한 통제로 인한 부작용으로 멸망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선택한 것은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더 체계화된 질서와 생태계였지만 나중엔 그마저 상실되고 만다. 전복된 설국열차에서 살아남은 요나와 티미는 북극곰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위험을 수반하는 질서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미래세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바라본 계급화된 세계는 파멸과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는 세계이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또 다른 단계로의 도약을 염원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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