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대단한 영화들을 품은 나라다.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네오리얼리즘을 탄생시킨 이탈리아의 영화는 그 깊은 예술적 토대와 생명력이 돋보인다. 이 글에서 다룰 영화는 어쩌면 네오리얼리즘과 정반대의 매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지알로 영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오페라>이다. 지알로는 이탈리아어로 노란색을 의미하며,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인기를 끌던 살인소설들의 표지 색깔이 노란색이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마리오 바바 감독에 의해 소설에 그쳤던 지알로가 영화 장르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알로의 공포영화들은 예술영화로써의 가능성을 도모했고, 오늘날 고어 영화와 슬래셔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가져다주었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루치오 풀치, 마리오 바바와 함께 이탈리아의 지알로 필름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그의 영화들은 강렬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마리오 바바 감독보다 강렬한 조명과 미술을 내세웠고, 서사만큼이나 날카로운 음향이 공포영화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찍이 이해한 감독이기도 했다.
그의 영화에서 다뤄지는 에로티시즘과 서스펜스는 장르적 쾌감을 남긴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지알로 장르를 다루며 피가 가진 잔인성과 욕망을 탐구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영화 <오페라>에서 등장하는 주인공과 살인마, 그리고 유혈을 중심으로 글을 작성할 계획이다. <오페라>에서의 서사와 스타일은 어떻게 장르를 규정시켰는지, 그리고 지알로의 지향을 통해 영화에의 접근을 확장시켜 보자.
<오페라>의 주인공인 베티는 교통사고를 당한 마라를 대신해 멕베스 부인을 연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멕베스를 다룬 오페라는 항상 불운을 가져온다는 소문 탓인지, 베티가 데뷔하는 첫 무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로 살인사건은 묻히는 듯했으나, 이후 그녀에게 집착을 보이는 살인마가 등장하며 극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살인마는 베티의 눈에 바늘을 붙여 눈을 감을 수 없게 만든 뒤,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죽이는 참상을 보게 한다. 살인마의 엽기적인 규칙은 오페라와 함께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멕베스>의 인물들처럼, 욕망과 살인으로 뒤덮이는 <오페라>의 구성은 베티의 해방을 향한다. 살인마를 포함해, 극 중에서 베티를 옥죄는 모든 요소들은 그녀가 후에 내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시선은 중요하게 다뤄진다. 살인마는 베티를 관객으로 삼듯이 눈을 감지 못하게 만든 뒤에 살인을 저지른다. 베티의 매니저였던 미라는 외시경으로 살인마를 확인하려다 총알이 눈을 관통한다. 정체가 밝혀진 살인마는 까마귀들의 공격으로 한쪽 눈을 잃는다. 이처럼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오페라>는, 시선으로 상징되는 인물들의 욕망이 항상 고통으로 응징되어 극의 주제를 강화시킨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오페라>의 살인마는 필요할 때는 베티의 눈을 뜨게 하고, 감게 하며 베티의 시선을 자유자재로 통제한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인물들의 시선에서 공포와 욕망을 이끌어내며 영화의 구성과 스타일을 완성시킨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들에서는 이따금씩 동물이 다뤄지곤 한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서스페리아 1977>의 개처럼, <오페라>에서는 까마귀가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까마귀는 오페라의 감독을 맡은 마르코가 기획한 연출의 일환으로써 등장한다. <오페라>에서 까마귀는 살인마를 응징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인간의 시선을 초월하여 작품의 신비감을 부여한다. 까마귀에 비해 비교적 비중은 적지만, 결말부에 이르러 베티의 자유를 상징하게 되는 도마뱀에서도 그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미술 속에서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물들의 모습은,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들을 보다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만들어낸다.
마침내 밝혀진 살인마의 정체는 형사였던 앨런이었다. 앨런은 베티의 오페라를 보고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쟁취하겠다는 욕망이 가져온 파멸의 결과에는 앨런 본인의 운명도 함께했다는 점이다. 마르코마저 희생된 상황에서 끝에 내몰린 베티는 자신을 앨런의 궁극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연기하며 상황을 역전시킨다. 앨런이 경찰에 붙잡힌 뒤, 살아남은 베티는 풀숲에서 발견한 도마뱀에게서 자유를 발견한다. 연인과 친구마저 살인마에게 희생되어 홀로 남은 베티는 해방감을 만끽한다. 작중 초반부터 암시되었던 베티의 불안은, 앨런의 살인극을 거치며 자유로의 욕망에 눈을 뜨게 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를 비롯한 지알로 필름들은 후대의 공포영화들의 귀감이 되었다. 지알로 필름의 장르적 구성과 오락성은 영화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장르영화에 강렬한 영향을 남겼고, 이탈리아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지알로 필름의 강렬한 음향과 색채는 이탈리아 영화의 역동성을 닮았고, 그들의 도전적인 실험성을 보여준다. 강렬한 미장센과 연출로 눈길을 사로잡는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과 함께 지알로 필름의 거장으로 꼽히는 마리오 바바 감독과 루치오 풀치 감독의 영화들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보다 세련된 영화 언어를 갖춘 장르 영화들이 넘쳐나지만, 1980년대 이탈리아의 화려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시켜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심오한 인식을 거두고, 오락을 위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