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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송 Aug 24. 2021

기타노 다케시가 다루는 <냉소>.

소나티네 (1993)

 일본을 대표하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방송, 영화, 미술을 막론하고 다양한 예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들에서 찾을 수 있는 폭력들은 그의 코미디를 닮았다. 예고 없이 방아쇠들이 당겨지고, 인물들은 무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여타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다루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에선 그 죽음을 바라보는 다른 인물들의 시선도 의미심장하다. 죽음에 대한 회의와 삶을 유영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가장 잘 담겼다고 생각되는,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개성과 강점이 가장 두드러진다고 생각되는 <소나티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려 한다.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은 기타노 다케시는 <소나티네>에서 조직 내의 견제로 오키나와로 몸을 피한 야쿠자, 무라카와로 등장한다. 사람을 크레인에 묶고 죽일 정도의 냉혹한 면모를 가진 그의 이면에는 숨통을 조여 오는 불안과 아이 같은 동심이 자리 잡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삶을 즐기고, 죽음에 회의를 던지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연출을 따라가 본다.




 바다는 죽음을 삼킨 적이 있다. 야쿠자로서의 삶을 끝내고 도박장을 차린 남자가 조직에 돈을 대지 않자, 무라카와는 그를 검은 바닷속 밑으로 가라앉힌다. 그 바다는 무라카와가 오키나와에서 다시 맞닥뜨린다. 그들은 바다를 앞에 두고선 한 번도 물에 뛰어들지 않는다. 삶과 죽음, 땅과 바다 그 사이인 해변이 그들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해변에 도착한 무라카와 일행은 가위바위보로 러시안룰렛을 진행한다. 무라카와의 장난으로 권총 안에는 총알이 없었지만, 무의미한 겨눔이 계속되는 야쿠자들의 싸움 속에서 무라카와는 회의와 불안을 느낀다. 땅의 울림으로 흔들리는 해변 위의 야쿠자들, 그들은 종이 인형처럼 삶이 이끄는 곳으로 발을 디딜 뿐이다. 오키나와에서 새로운 옷을 즐기고, 함정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며 야쿠자들은 삶의 향기와 죽음의 향기 모두 만끽한다.

 무라카와는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차를 타고 도쿄의 밤을 배회하던 무라카와는 부하에게 야쿠자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부하는 믿지 않는다. 오키나와의 밤에서도 폭죽 대신 권총을 쏘던 무라카와는 놀이에 죽음을 얹는다. 분명 자신의 옆을 도사리는 죽음을 그는 부정하지 않고 주목하기 때문이다. 

 바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총격전에는 표정이 없다. 긴장감을 위한 연출도 일절 찾아볼 수 없고, 인물들의 회피하려는 태도도 찾을 수 없다. 한쪽이 모두 죽어야 끝난 총격전은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던 손님들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폭죽처럼 빛나다 결국 꺼지고 마는 야쿠자들의 운명처럼 총격전을 감상했던 손님들의 시선에는 허무가 담겼다.

 무라카와는 밤바다 앞에서 여자를 위협하던 남자를 살해한다. 남자는 장난이 아니라며 무라카와의 목에 칼을 들이밀지만, 마찬가지로 진심이었던 무라카와는 남자에게 두 발의 총성을 안겨준다. 여자는 징악의 현장에 반응하지 않는다. 오키나와로 무라카와를 부른 두목도 아내를 곁에 두고 죽은 것처럼, 해변 안에서 벌어지는 놀이는 남성들로 가득하다.

 무라카와가 오키나와에서 만난 동료인 유키는 오키나와의 춤을 즐긴다. 머리에 꽃을 이고 조개껍질을 두드리면서 춤을 추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는 무라카와는 삶을 느낀다. 머리에 총알 대신 꽃을 인 부하들과 총구를 원반을 향해 쏘는 무라카와의 모습에서 불안을 떨쳐내려는 인물들의 내면이 엿보인다. 해변 위에 흩날리는 꽃들, 그리고 그 원반을 못 맞추던 총알은 결국 적의 손을 통해 그들의 이마에 도착한다. 엄습하는 죽음을 발견한 무라카와는 바다와 점점 가까워진다.

 무라카와는 조직 내의 라이벌인 다카하시로부터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보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오야붕을 둔 동맹관계인 오키나와의 조직을 버리고, 새로운 조직과 손을 잡으려는 두목의 속내를 알게 된 무라카와는 기관총을 들고 협상 장소에 찾아간다. 야쿠자의 운명 위에서, 무라카와는 홀로 최후의 전투를 치른다. 총격전은 화려하지 않다. 요란한 총격음과 총구에서 튕겨 나오는 불빛들이 밤을 반짝일 뿐, 찰나의 폭죽처럼 연출된다. 

 모든 싸움의 끝을 맺은 무라카와는 차와 함께 길 위를 배회한다. 그리고는 러시안룰렛에서 남겨 둔 총알이 그제야 무라카와의 머리를 꿰뚫는다. 무라카와가 걷던 운명의 끝은 마침내 자신의 몸에서 바다를 흘리며 마무리 지어진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른 것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따르는 그만의 연출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매력을 지녔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현재 일본에서 감독으로서의 은퇴작으로 이야기한 <목>을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혼노지의 변'이라 불리는 일본사의 미스터리 한 사건을 배경으로 그리는 작품이라고 한다. 냉혹함 속에서 인간미를 그려내는 그의 연출로 탄생하는 혼노지의 변을 기대하게 된다. 범죄, 성장, 그리고 희극을 빙자한 허무주의를 내세운 그의 작품들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만의 냉소, 그리고 그 시선들을 담고 있다. 때론 차갑고, 때론 따뜻한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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