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빨래

230809

by 케비놀로지

내겐 아무리 바빠도 격주에 한 번은 이불을 빨아놓고 바짝 말리는 습관이 있다.


이 이상한 습관이 주는 행복은 아침나절, 분주한 가운데 이불을 빨고 꾸역꾸역 빈방에 제습기를 틀어놓고는, 밤이 되면 이불을 걷어서 까슬까슬한 표면에 맨살을 맞대며 식혀지지 않는 습한 공기를 비집고 잠이 드는 데에 정점에 도달한다.


지금이 딱 그렇다. 힘겹게 준비해 온 작업의 결과물을 내고는 한껏 승리감에 도취되어 잠이 들랑 말랑했던, 그런 어느 평범한 일상이 매듭지어지던 순간.


나이가 들수록 내 행복을 찾기에 급급해서 잊혀져가는 게 있다. 뉴스에, 또는 내 주변의 소식을 통해 한껏 분노하다가도 삶의 자리에서 당연한 듯 잊혀져가는 것들. 그런 내가 부끄러울 때마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빛을 찾아 숨는 나. 차디찬 봄을 기다리는 칠흑 같은 겨울밤의 모습으로, 그렇게, 꽤나 수치스럽게.


왜 음악을 공부하고 왜 뮤지션으로 살고 있을까.

보통 뮤지션들의 진부한 시작점처럼, 세상에 위로를 전하고 싶다던, 끈기 있게 분노할 줄 알았던 만 열일곱의 나는 이 시끄러운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기능화성으로 이루어진 줄 알았던 세상이 클러스터 덩어리인 걸 그때 알았어도, 달라지는 게 정녕 없었을까. 괜찮아. 지금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선택을 해왔잖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사랑이 고갈된 우리들, 행동하지 않는 우리들, 공기의 진동을 통제하는 직업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우리들. 그런 와중에 입술로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매너리즘으로 점철된 하루를 허비하잖아.


애써서 살아온 일상이 쌓여갈수록 감사와 수치심이 지워져 가는 게 나이를 먹는 것과 동의어가 되지 않기를. 만 열일곱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흠뻑 젖은 이불을 바삭하게 말려줄 만큼의 뜨거운 태양과 바람이 필요하다.


생각 없이, 관심 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사회 면면의 사건사고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정말 크게 뒤흔들어놓았으면 좋겠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얼마나 더 아파야 이 마음이 요동칠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든 아니든, 우리는 이상을 향해 달려가야 해. 어젯밤, 덮고 자기엔 충분해 보였던 이 이불도 탈수할 때는 맑지 못한 색깔의 물이 콸콸 쏟아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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