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230810

by 케비놀로지

기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른이라던가, 우상처럼 여겨오던 사람이라던가. 삶에서 누구나 동경해 오던 대상에게 예상치 못한 반응을 받을 때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 시간을 퍽 호되게 치렀던 것 같다. 그 과정을 ‘상처받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 조금 더 명확한 선택과 관계성을 확립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있기에. 젊은, 아니 어린 용기와 맞바꾸어진 듯한 경험이 없는 열정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잔인하게도, 모든 인격 안에는 차가움이 푸르딩딩하게 살아 숨 쉰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 때문에 제 온도에 처량하게 식어버린 우리 모두는 따뜻함을 찾아 나선다. 서로 기대고 싶고, 각자의 차가움을 서로의 따뜻함으로 중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실상 각자가 원하는 온도는 뜨거움에 수렴한다.


따뜻함을 찾아 바짝 다가섰다가 불을 가장한 얼음에 데이는 과정의 반복,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 과정은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닐까. 아, 당신도 결국 나와 같은 인격체였군요. 실망하지 않을게요. 겪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을 통해 결국 피부 깊숙한 곳에 침투하는 건 ‘적당한 온도’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적당한 온도를 찾아냈다는 건 또 아니다. 다만 명확하게 보이는 건, 현재 나와 함께하는 이들은 과거에 내가 찾아 헤매던 온도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다. 적당한 온도가 무얼까. 미지근한 건 싫은데. 반복된 상황 속에서 만난 미지근한 사람들이 모여 그 이상한 온도 안에서 몸 좀 덥혀보겠다고 가까이 가까이, 그렇게 살다 보니 생각보다 꽤나 높은 온도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적당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뜨거운 온도일지언정, 우리에게는 지금 익숙하지만 여전히 낯선 이 온도가 필요한 걸. 나는 이걸 ‘심각하기보다 진지한 온도’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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