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땅 위에서

230925

by 케비놀로지

내가 밟고 있는 땅은 병들고 아파한다.


발끝으로 전해오는 건 단순한 흙의 감촉이 아니었다. 갈라진 흙 사이로 새어 나오는 무언의 떨림은, 마치 오래된 바이올린의 공명처럼 울렸다. 그건 아팠다. 감정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내 무릎 아래의 지구가 마치 숨죽여 울고 있는 것처럼.


땅을 향해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액체가 아니라, 땅을 어루만지는 단단한 손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아래 서 있었다. 수천 개의 손톱들이 나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았다. ‘아파’라는 말을 하지 못한 날들이, 흙먼지 속으로 스며들어 식물의 뿌리를 부풀게 했다. 뿌리는 곧 감정의 신경다발이고, 나는 다시 그 위에 서 있었다. 무심히, 그러나 미안하게.


창문 틈새를 힘겹게 비추며 시멘트 위에 앉아있던 노을이 어느 순간 내 등 뒤에서 말을 거는 듯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붉게 타오를 수 있다는 걸 너는 알고 있어?"


그 붉음은 단순한 색이 아니었다. 타오르는 게 아니라 천천히 썩어가는 열이었다. 피로 물든 종이처럼, 어딘가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그 열이 내 손등으로 옮겨 붙어, 나는 갑자기 내 손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땅이 아파할 때 사람도 아플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모두가 병들었구나. 그게 공명이고 배음법칙이라는 걸 알았다.


나, 그때 처음 느꼈어. 바람이 향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아니, 아니지. 정확하게는 향기가 ‘온도’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초저녁의 공기는 뺨을 쓰다듬는 듯했지만, 코끝에서부터 가슴팍을 밀어내는 건 어김없이 차가웠거든. 그 향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조금은 불쾌한 시트러스 같기도 하고, 녹슨 철문 같기도 하고, 오래 입지 않은 옷을 꺼낼 때의 나프탈렌 같기도 했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그걸 몸 안에 지문처럼 아프게 새겼다. 그건 땅의 체온이었고, 동시에 내 첫사랑의 체취였다.


나는 자주 잊는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고통받고 있다는 걸. 하지만 땅은 잊지 않는다. 발뒤꿈치의 무게, 신발 밑창의 모양, 발가락 끝에 실린 무심한 조급함까지도. 그래서 때때로 길 위에 핀 민들레 하나가 수많은 형용사를 남발하는 대신 그렇게 격렬하게 흔들리는 거겠지.


내가 밟고 있는 땅은 병들고 아파하지만, 그 병듦 속에 있는 진심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아직은 피어내고 싶어 하고, 아직은 감싸 안고 싶어 하고, 아직은 용서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땅의 중심에서부터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위에 선다. 이 땅이 아프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병들었다고 표현한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다시, 한 발짝, 또 한 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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