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3악장, '재회'

240621

by 케비놀로지

베토벤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루돌프 대공에게 자신의 스물여섯 번째 피아노 소나타를 헌정한다. ‘고별 - 부재 - 재회’로 이어지는 전 악장의 소나타를 묶어 흔히 ‘고별 소나타’라고 불리우는데, 제3악장인 재회는 내게 있어 그 어떤 음악보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었다.


그중에도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엉뚱하게도 주제 선율이 아닌, 1 주제와 2 주제 사이 트랜지션에 등장하는 잠시 쉬어가는 듯한 패시지인데, 기껏 댐퍼 페달을 눌러 악기가 가진 서스테인을 물리적으로 최대화시켜 놓은 상태에서 스포르찬도 - 스타카토를 지시해 놓은 이 부분은 첫 음악 전문 교육을 받았던 입시생 시절 여름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상론적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종소리를 연출했으리라 짐작하는 수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그의 의도가 고작 종소리에 그치지는 않았겠지. 예를 들면, 일평생 혼자였던 그가 영원한 재회를 갈망했다거나. 또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하고도 살아남은 그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을 루돌프 대공의 존재가 그에게 차지하는 무게라든지, 귀머거리로 일생을 살아가야 할 인생에 대한 극복 의지거나.


전위된 변성화음 - 속화음의 트라이어드로만 이루어진 고작 8마디가 선잠이 들었던 나를 흔들어 놓는다. 같은 화성 진행으로 구성된 새소리 같은 음형의 다음 8마디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하다.


가슴을 치던 손으로 죽자고 달려들어 피아노를 치며 고민하던 오늘, 15분짜리 3관 편성보다 고민이 많았던 지난 몇 주의 고민이 종식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비집고 들어오는 음 여섯 개, Bb, Db, Gb, 다시 A, C, F.


삶이 간결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는 건 아닐까. 친구의 부재 상태인 복잡다단한 감정의 해결을 단지 음 여섯 개로 충분히 깊고 넓게 표현한 베토벤처럼.


몰아치는 생각을 뒤로하고, 한나절 후에 있을 녹음을 위해 오케스트라 총보와 파트보를 뽑아 놓고는 멈칫한다. 악장마다 아타카로 이어지는 내 삶에 음표도 아티큘레이션도 너무 많네. 그치만 이 또한 내 오선지임을 부정하면 안 되겠지.


그래, 마침내 건강한 나를, 너를 ‘재회’하는 날에 또다시 한 발 더 가까워진 오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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