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0
법적인 성인으로 십 년을 훌쩍 넘게 살아온 마당에, 나는 어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는 글렀다고 고백한다.
삼십 대를 넘겨도 그리 큰 나이가 아니라는 걸 왜 중등 교육 과정에서는 안 알려줄까. 꾹꾹 누르고 감춰왔던 조급함에 넘겨버린 이십 대였던 것 같아 조금은 후회가 남지만, 뭐 어때.
사람에 대한 증오가 사그라들어가는 요즘이 좋다. 내가 성숙해져서가 아닌, 증오보다 더 큰 사랑으로 덮여지고, 썩 괜찮아지는 무언가. 딱 내 인생이 하찮아지는 만큼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다시 귀해지는 내 인생이구나 싶어서. 아무튼 그게 좋다.
모든 사람에게 나이스하다가 나에게는 세상을 향한 자신의 예민함을 표현할 줄 아는 친구 녀석이 좋다. 별것도 아닌 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감정을 쏟아내고는 마주 앉아 밥 먹으며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줄 아는 룸메 녀석이 좋다. 세상 날 선 이성적 비평으로 예술을 마주하다가 내 음악 앞에 감정 어린 조언을 할 줄 아는 선배가 좋다. 함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폭풍 속에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친구가 좋다. 관계 안에서 상한 마음을 나누고자 했을 때 오히려 기뻐하며 내 진심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동생들이 좋다. 불합리한 일에 주저 없이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동생이, 자정이 넘어서 전화해서는 자신의 진심을 기어코 표현해 낼 줄 아는 동생이 좋다.
좋은 걸 좋다고 충분히 넘치도록 표현하는 걸 미성숙하다 일컫는 꽤나 차가운 세상의 표면을 어른인 척하면서 맨발로 걷다 보면, 좋고 싫음의 감각이 동상 걸린 발가락을 움직이듯 꽤나 둔해진다. 호불호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살아가는 게 어른이라면, 나에게 당연하지 않게 베풀어진 마음을 신발 삼아 신고 철부지로 남길 선택할래. 다시 또, 난 그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