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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은 곧 신적인 존재에 대한 순명이며 결핍을 애써 감춰내고 좋은 것만을 드러내려는 사회 행태에 대한 격렬한 항의가 아닐까.
어느 날이었다. 가을 햇살에 얼굴이 타는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거실 통유리 앞에서 바깥을 바라봤던 날. 까치가, 토끼가, 고라니가, 떠돌이 개가 마음껏 놀다 가는 우리 집 마당 같은 마음을 내가 가질 순 없는 걸까. 까치떼가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 무리 지어 하늘로 솟구쳐 오른대도 놀러 오는 동물들을 그대로 다시 품어주는 마당.
그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몸 아래로 뜨겁게 데워진 바닥이 느껴졌고, 어렴풋한 따뜻함이 배 속에서 퍼지는 것 같았다.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가던 하루. 의자도, 커튼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마치 그 가구들 사이에 끼워진 하나의 덩어리 같았다.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나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나는 종종 그 속도에 매몰된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마음이 기우는 나날. 창문에 부딪히는 낙엽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그 안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의 시간을 듣고 있었다. 동물들은 아무 말 없이 다녀가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늘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배설물일 수도 있고, 발자국일 수도 있고, 낯선 냄새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국조차도 이상하게 마음을 데운다. 존재가 존재를 건드린다는 건 어쩌면 그 자국으로부터 오는 온기 때문일지도.
나는 그 마당처럼 살고 싶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누구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는 존재. 소리 높여 웃는 날에도, 굳게 입을 다문 날에도, 누구 하나 묻지 않는 마당. 다만 햇빛은 매일 다르게 들고, 새들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울고 날고, 바람은 종일 방향을 바꿨다. 그런 유동적인 것들 속에서 나만 자꾸 고정되며 단단해지려 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르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불편해졌다. 있는 그대로라는 말속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너무 많이 보아버려서. 있는 그대로 두자는 말이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때도 있었고,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실은 당신이 감당하라는 말일 때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마당을 바라보게 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계속 품는 그 공간을.
바깥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서 앉은 날이 많았다. 문턱에 한쪽 발만 걸친 채로 오래 서 있었던 날도 많았다. 나아가면 맞닿을 것 같은 어떤 것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동시에 다가가고 싶지 않은 묘한 이질감. 내 안의 어떤 갈피를 손끝으로 더듬는 느낌이었다. 꼭 닿을 듯한 무언가가 끝끝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나는 천천히 주저앉는다. 그리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 듣는다. 이 집이, 이 마당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
비가 오면 매번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물이 고이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는 이상하게도 다른 데보다 더 많이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따뜻해 보인다. 빗물이 고인 자리를 들여다보며 나는 내 마음속에도 그런 자리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번 같은 자리와 같은 깊이로 고여버리는 감정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 마음 한 조각.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감정들을 잘 말려야 한다고. 곰팡이 핀다고, 곪는다고, 썩는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감정은 썩어야 제 맛이다. 썩고 삭아야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단내가 나는 마음은 어쩌면 오래 참았던 것들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썩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싫지 않다. 오히려 낯익고 따뜻하다.
밤이 되면 거실 통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나를 쳐다본다. 개인공간이 아직 확보되지 않은 이 곳, 유리는 거울처럼 나를 반사하지만 나는 거울처럼 나를 반기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바라본다. 오늘 하루를 통과한 사람, 웃기도 울기도 했던 사람. 물 한잔 마시고, 창문 열고, 그렇게 사소한 움직임으로 버틴 사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있지만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었던 사람. 나는 그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라는 말도 지독하게 조용한 말이다. 대단한 선언처럼 포장되지만 실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보상받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마당처럼 고요하다. 그러니까 마당은 사랑일 수도 있겠다. 까치떼가 놀라 달아나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그 무언가. 아무 말 없이 모든 걸 다시 받아주는 그 무언가.
그러니까 나는 자꾸 바깥을 본다. 나가고 싶은 게 아니라 들어오고 싶어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바람, 흙냄새, 동물들, 잎사귀, 그 모든 것들을 마중 나가고 싶어서. 실은 그게 다 나였던 것 같다. 나를 향해 오던 나. 너무나 멀리서,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이제야 조금씩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살아있음이란, 뭔가를 계속 견디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항의하며 계속 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마르지 않는 물기를,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두고 그대로 살아내는 것. 그러다 보면 언젠가 까치가 다시 날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마침내 그 마당처럼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