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

250311

by 케비놀로지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마음속으로 복기하고 있는 ‘부조리함을 응시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에의 또 다른 접근법을 베나타의 책을 읽으며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출생 자체가 비극이라고 한다.


공부하고 알아갈 것이 많은 비워져 있는 인생은 비극일지언정, 동시에 그 비극 안에서 기이하게 피어나는 기쁨이 존재하는 거구나. 어떤 날은 그것마저 기적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걸 나의 시선에서 재정립해 보면, ‘인격의 탄생’의 의미는 고통을 겪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사랑과 의미를 발견하기 위함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삶 그 자체는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고통의 존재는 단지 피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전제조건이기도 하다는 갈무리.


무언가를 두드리는 일이 정말 많았던 사흘이었다. 타이핑을 치며 장문의 글을 쓴다던가, 학부생 때 멜로디만 써놓고 미뤄두었던 곡의 가사를 이제야 붙인다던가, 피아노 커버 위에까지 쌓여가던 먼지를 죄다 털어내고는 건반 위에서 무지성으로 한참을 두드렸다. 또, 망치와 못, 나사와 전동드라이버를 들고 방에 블라인드를 새로 달고 오래된 가구들을 손보고, 벽에 걸려 있어야 할 물건들을 제자리에 되돌려놓았다. 마치 어지러운 내 마음의 풍경을 조용히 정리하듯이.


산책과 운동을 가장한 피크민 중에 꽃잎을 두드리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엄마가 사준 새 트레이닝 복을 입고는 그저 리듬에 맞춰 걷고, 바람에 맞춰 숨 쉬고, 향기에 맞춰 고개를 들고. 누군가와 대화하듯 자연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 속에서 나를 많이 닮은 얼굴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봄이 와 있다. 난로 옆에 있기엔 꽤나 더운 오늘이고, 마당엔 점점 더 많은 동물들이 오고 가고 있다. 그래, 반드시 봄은 오잖아. 사람 마음을 어지럽게도 두드리면서 말이야. 따뜻함이란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기다려준 끝에 피어나는 것이겠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따스함을 발견하는 것이 인간됨의 본질이라면, 고통조차도 사랑을 위한 토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힘겹게 이어진 하루 속에서도 고통은 삶의 균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스며들 수 있는 틈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빛이, 또 누군가의 미소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니까.


그게 나를, 너를, 각자 자신과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하지 않을까. 단절이 아닌 연결로, 침묵이 아닌 이야기로, 고립이 아닌 상생으로 나아가는 길.


비록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때로는 의미를 잃은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_ 우리는 다시 사랑하길 선택하고 다시 살아가길 선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이야말로 삶을 이루는 가장 작고도 찬란한 기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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