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상실

250228

by 케비놀로지

정신 차려보니, 8월부터 1월까지의 기억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내 삶이 거대한 회색 안갯속으로 스며들어 흐릿하게 변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함께 살던 동생이 나의 흐릿한 과거를 복기시켜 주고, 카톡의 남은 대화 내역이, 메모장에 써놓았던 자전적인 글들이 내 발자취를 따라 그 기억들을 애써 풀어내줬다. 그 과정에서 어느새 잃어버린 것들과 남은 것들이 상반된 얼굴을 드러내며 마치 잃어버린 한 페이지를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잃어버린 시간들 속에 무엇이 잠자고 있었는지... 나는 그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기억의 심연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처럼, 내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찾았는지 모르고 헤맸던 순간들의 연대기였다. 시간은 아득하게 흐르며 나는 그 허공 속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오갔다. 내가 그렇게 떠나버린 동안 세상은 고요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나를 잊어갔다. 마치 나는 그 시간 속에서 하나의 고독한 빛을 잃은 별처럼 소멸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 돌아왔다. 동생이 내게 전해준 작은 조각들, 카톡 대화 속에 남겨진 단어들, 그것들이 나는 이제야 보인다. 그것들은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잊혔던 나의 발자취들이었고, 나는 그 발자취들을 따라가며 점차 나 자신을 되찾아갔다. 그 작은 조각들이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처럼 하나씩 맞춰지며 나는 다시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짓누르던 허무감과 무기력함은 이제는 나에게 소중한 교훈이 되었다. 그 고요하고 어두운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리기보다는 오히려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하나하나, 자신이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얻었는지를 천천히 풀어갔다. 잃어버린 시간이 결코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본질적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내가 놓쳤던 것들은 결국 내가 다시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든 발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며, 나는 한 가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게 되었다. 그 모든 시간이 왜 그렇게 무의미하게 지나갔을까? 내가 왜 그리도 마음을 놓고 놓아버렸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아마도 내가 계속해서 답을 찾아가야 할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내게 던져지는 질문들을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떠오르는 거품처럼 쫓아가며, 스스로에게 더 많은 것을 물었다. 그 물음들은 나를 허공 속으로 떠밀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시간을 응시하며 나를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 시간들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걸까?


그것은 바로 시간이 지나가고, 우리가 겪은 아픔과 기쁨이 비로소 내 안에서 하나로 이어질 때,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요히 흐르는 물처럼,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나의 본질을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경험들을, 그 기억들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들이 결코 나를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바라본 세상은 달라졌다.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을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세상은 나를 속일 수 없었고, 나는 그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길은 여전히 험난하고 때로는 불확실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걸어가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갔다. 그동안 나를 기다렸던 것은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모든 과거와 현재를 포용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나는 다시 한번 내 안의 온기를 느끼며 걸어가야 한다. 이 시간이 주는 교훈을 그대로 담아내며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값진 시간들로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각 순간은 의미를 더해가며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이다. 이 세상이 나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나는 그저 묵묵히 따라가며 나 자신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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