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2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차가운 '이별'의 온도가 있다. 그치만 그 부정적인 온도가 내일을 꿈꾸게 한다는 건 여러 의미에서 삶의 역설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차가운 송정해수욕장의 바다가 차갑기만 해 보여도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일까_ 나는 이별이라는 단어가 마치 촉각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차가운 해수욕장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속삭인다. 여기라고, 이곳이라고. 시간은 흘러도 바다는 늘 이곳에 있었다는 듯 잔잔하게 밀려왔다가 물러난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의 감각처럼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지만 그 물결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반복되는 이별의 파형을 관찰하게 됐다. 마치 무늬가 있는 물결처럼, 어떤 날은 조금 더 높고 어떤 날은 힘없이 꺼져버리는 느낌. 그 안에서 뭔가를 붙잡아보려 손을 뻗지만 파도는 늘 미끄러진다. 차가운 바다에 발끝을 담갔다가 곧장 되돌아 나오면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고,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날이 흐릴수록 풍경은 또렷해진다. 흐릿한 하늘 아래에서 모든 것이 색을 입는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안의 감정들도 나이를 먹는다. 억지로 덮어뒀던 감정의 결들이 어느새 다시 드러나 있다. 송정해수욕장의 회색빛 파도는 기억을 긁고 덧없이 맑은 모래 위에 무언가 쓰고 지운다. 다시 쓰고, 다시 지운다. 나의 이름을, 나의 지난날을.
형광빛 없이 무채색으로 이어지는 풍경 속, 나는 오히려 따뜻함을 찾는다. 따뜻함이란 늘 따뜻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오히려, 차가운 것을 맞이할 줄 아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잠깐 스쳤던 손끝의 온기, 서투른 말투 속의 진심, 끝내 내뱉지 못했던 한마디 속에 잠들어 있는 따뜻함. 그건 생각보다 쉽게, 그러나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차가운 바닷가에 선 채, 어젯밤 아스라이 찬란했던 도시의 불빛을 생각한다. 살아가는 일이란 결국 먼 불빛을 향해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워지면 희미해지는 그 빛. 그래도 걷는다. 걷는다는 건 믿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나도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그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의문을 품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모든 건 찰나의 경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찰나가 내게는 유일한 전부였다면, 그건 그냥 찰나는 아니지. 차가운 파도에 덜컥 놀랐던 순간, 길 잃은 고양이가 내 복숭아뼈에 뺨을 비비던 순간, 그 모든 순간은 한없이 짧았지만 지금까지 나를 살게 만든 무언가였다. 이별도 그랬다. 다신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자리에 계속 머물게 한 어떤 힘.
누군가 나에게 물은 적 있다. 그렇게 계속 흘러가버릴 것을 왜 그렇게 애써 붙잡고 있냐고.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흘러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별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삶의 구조가 된다. 우리는 결국 기억으로 살아간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곱씹으며, 미래를 예감하는.
바다는 아무 말도 없다. 대신 모든 말을 품고 있는 듯하다. 들리지 않지만 들리는 말들. 이해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감정들. 삶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해변의 모래는 한 줌씩 흩어지지만, 그 자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발자국을 받아들인다. 그래서일까. 차가운 오늘에도 나는 계속 걸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어제를 지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향해.
그 내일이 어떤 온도를 가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 발바닥에 닿는 이 차가움이 언젠가 따뜻함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믿음,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그 믿음은 어떤 신념이 아니다. 다만, 계속 살아야겠다는 감각. 살아있는 것이 기꺼이 차가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 물결이 내 발목을 스치고, 나는 또다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