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9
주말에 아끼는 동생 셋이 양평집까지 놀러 왔다. 기특하기도 하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가며 와인을 마셨다. 힘을 주지 않아도 대화는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모닥불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따뜻하고 조금 아득했다. 시간이 내 방바닥에 고요히 내려앉아버린 느낌이었달까.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대해주는 모습들, 다름이 부딪히지 않고 겹쳐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굳이 맞추지 않아도 이상하게 닿았다. 나는 그 다름들 안에서 한 가지 같은 것을 느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언가_ 서투르지만 분명히 다정한 것.
그날의 대화를 복기하다가 다시 떠올랐다. 20대 중반부터 나도 모르게 천천히 피로가 쌓였던 것들. 병적인 애정, 기대, 침묵에 대한 두려움. 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죄가 되는듯한 공기. 누구도 강요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기대했던 그것.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무너졌다.
이번 성주간, 귀가 먹먹해 병원을 찾았다. 난생처음 양쪽 귀를 다 청소했고 오래된 귓속의 먼지들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청력검사를 마치고 다시 마주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중학생 수준의 청력이라는 좋은 얘기도 해주셨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자 오일장이 한창이던 양평 읍내는 분명하지만 불쾌한 방법으로 내게 쏟아져내려왔다. 건너편 아줌마들의 대화가 유리창을 깨듯 파편이 되어 내 귓가에 박혔고, 자전거를 타고 귀를 스치는 바람은 전투기 이륙 소리처럼 들렸다. 모든 소리가 새것처럼 반짝였지만 새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너무 밝은 스포트라이트 아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순간 숨이 가빠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찾아온 공포감을 동생 녀석과의 통화로 떨쳐내며 집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사람보다 바람이 먼저 오는 외딴집. 그곳에는 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나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귓가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분명 분홍빛이었으리라. 감촉과 소리와 색깔이 하나로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시고,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그렇게 또 회복되어 갔다.
동생들과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신부님 한 분과 단둘이 조용한 저녁을 함께했다. 동생들과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고요였다. 신부님은 나를 읽어주셨다. 속도나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펼쳐진 페이지를 따라가듯. 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게 되고,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나 많은 것들을 듣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들어야만 했던 걸 지도 모르지. 내 안의 소리부터, 사람들의 마음까지.
쌓아뒀던 것들이 무너지고,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머물고, 놓쳤던 것들이 조용히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들리는 것들은 때로 두렵지만, 그걸 견디는 가운데서만 진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오늘의 나는, 아직 들리지 않는 것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