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싱킹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읽어내는 사고법입니다.
디자인 싱킹에서 고객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연구자가 고객과 공감해야 비로소 고객의 눈으로 그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행동의 이해를 들여다보는 능력이 바로 고객 인사이트입니다. 우리말로는 고객 통찰력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는데요. 이는 아무리 관련 도서를 많이 읽어도 방법론을 많이 알고 있어서도 쉽게 가질 수가 없는 능력입니다. 고객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능력을 기르는 왕도는 바로 끊임없이 고객 현장에서 고객과의 공감을 높여 가는 것뿐입니다.
고객 인사이트를 갖기 위해서는 직접 고객이 되어 고객이 이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좀 더 깊은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생활환경 전반을 둘러볼 필요도 있습니다. 즉 어떤 정황(콘텍스트) 속에서 고객이 특정한 페인과 니즈를 갖게 되는 가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면 좋다는 의미인데요. 사람들은 특정 지역에, 특정 환경에, 그리고 특정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문화권이라는 콘텍스트에 의해 동일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목적이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 다양한 자판기를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요. 이를 가지고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일본, 미국의 자판기에 대한 이용 행태를 비교해 보죠.
먼저, 세 지역 중에서 자판기가 다양하고 그리고 가장 발전한 곳은 일본입니다. 제가 1990년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식당이나 지하철역 등의 장소에서 다양한 종류의 자판기를 발견하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자판기의 역사가 긴 만큼 그 발전 정도도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에게 자판기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인스턴트커피나 음료 자판기일 것입니다. 지금은 책이나 꽃 그리고 심지어 음식까지 파는 다양한 자판기가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자판기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사실 쉽게 자판기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주로 역이나 공항, 학교 같은 공공장소에서 초코바나 음료를 파는 것이 전부였고, 제가 확인하기엔 아직도 그 모습은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는 현상, 팩트에 대한 설명이었고요. 그러면 자판기에 대한 3개국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죠. 물론 제가 많은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생각해서 여러분과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한국의 자판기의 특성을 보면, 그 설치 위치와 판매 상품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인스턴트커피 자판기는 주로 골목의 작은 가게에 설치되어 있거나 혹은 공공기관의 건물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게 많았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상품 구색은 구멍가게에서 팔고 있지 않은 제품이 따뜻한 커피 등의 제품, 혹은 상점이 들어가기 어려운 장소에 위치해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하면 상점 주인이 구색을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하거나 고객들의 니즈를 임시방편으로 충족시켜주는 것이 강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하여 한국의 자판기는 대면 거래가 부담스러운 제품을 취급하는 목적으로도 설치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공장소의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는 피임용품 판매 자판기가 이를 설명하고 있죠.
그럼 일본과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일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처럼 상품 구색을 갖추기 위한 목적의 자판기도 많지만,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식당 앞에 설치되어있는 주문을 위한 자판기입니다. 이는 서로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정서와 문화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가능해지는데요. 자판기를 통해 식당 점원과 고객들과의 인터렉션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식당 주인들의 편의보다는 고객에 대한 배려가 더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그야말로 상점이 들어가기 어려운 장소에 고객의 간단한 허기를 달래주는 등의 작은 수요에 집중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미국인들의 쇼핑 행태를 통해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큰 땅덩어리를 가진 미국의 시민들은 저장 소비의 행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시 말해 생필품 쇼핑을 한 번에 대량으로 해서 저장하고, 안전재고를 유지하는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죠. 따라서 거리 곳곳에 상점을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소비 행태가 자판기의 설치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즘 한국에 설치되어 있는 자판기의 모습들을 보면 고객들의 생각이나 콘텍스트의 변화도 읽을 수 있는데요. 제품을 파는 자판기에서 주문을 위한 자판기가 늘어나고 취급 제품의 경우도 구색을 맞추기보다는 품목이 중복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혹은 대기표를 받기 위한 자판기처럼 무언가 서비스를 대체하는 목적의 자판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고객 콘텍스트의 변화는 먼저 사람들이 종업원과의 인터렉션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의 유통 키워드로 언텍(untact)이라는 현상인데요. 두드러지는 모습은 사실 고객관점보다는 종업원 관점의 거부감이 더 반영되고 있는 느낌이라는 점입니다. 즉 종업원이나 업주의 편의가 더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리고 미국의 사례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인건비에 대한 인정과 비용 상승이 반영된 현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기계를 설치하는 편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보다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업주가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의 상점 주인이 설치하는 자판기의 목적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이는 부분입니다. 사실 인건비가 매우 높은 미국의 사례와 비슷해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이처럼, 자판기라는 동일한 형태의 제품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처한 콘텍스트에 따라 서로 다른 태도와 이용을 보이게 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단편적으로 보면 사람들의 자판기 이용은 무언가 필요한 임시의 제품을 빠르게 획득하는 편의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겠지만, 이를 세 문화권이 처한 콘텍스트를 좀 더 들여다 봄으로 해서 좀 더 다양한 해석과 이해가 가능해지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판기의 등장이 고객관점에서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 정말 사업 관점에서 유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1. 거리에서 커피를 전문으로 팔고 있는 가게 앞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주문을 위한 자판기가 두대 설치되어 있고 가게 주인은 자판기를 통해서만 주문을 받고 있는데요. 그 앞에선 고객들이 몇 분째 기기 앞에서 주문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주문을 위한 자판기는 과연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할까요? 누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상점 주인에게도 고객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일까요?
사진#2. 패스트푸드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키오스크 자판기의 모습입니다. 이 점포의 경우는 키오스크만으로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요. 대부분의 경우 주문에 시간을 들이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인건비 감소의 측면이 고려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고객 순환율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과연 대인 주문방식 대비 어떠한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을까요?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소외층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사진#3. 아이스크림 atm이라고 이름 붙여진 자판기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자판기는 아이스크린 가게의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데요. 고객은 가게에 들어가서 점원에게 주문하거나 아니면 이 기기를 직접 이용해서 주문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구색의 확장과는 다른 성격의 자판기인 것이죠. 한동안 지켜보았는데 이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드나드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죠. 이는 고객의 어떤 심리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진#4. 손님이 붐비는 식당 앞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 순서 번호표 등록기입니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순서가 되면 불러주는 기기인데요. 대기 손님을 관리하는 점원의 역할이나 숫자를 줄일 수 있는 기기로 생각됩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대기 관리 방식에 비해 어떤 점들이 나아졌을까요?
+들여다 보고, 이용해 보고, 여러 번 생각해 보는 것이 고객 통찰력을 기르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 나와 다른 콘텍스트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환경과 생활양식 즉 문화까지도 들여다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