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싱킹을 흔히 디자이너 특유의 생각하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대부분 디자이너의 역할이 창의적이고 비주얼적인 새로움을 만드는 것에는 비 디자이너는 모르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있죠.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비 디자이너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오랫동안 비주얼적 테크닉을 수련한 디자이너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비 디자이너를 비교하는 관점에서는 말이죠.
하지만, 거시적인 시각으로 디자이너의 일하는 법 혹은 생각하는 법을 들여다본다면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표 1)
1. 가설 수립 : 상품 기획자나 현재의 제품 디자이너 모두 가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상품 기획자의 가설이 연역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에 의해 나온 방식이라면 디자이너의 가설은 귀납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에 의해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기획자는 자료를 검토하고 가설을 만들고, 디자이너는 관찰을 통한 직관을 통해 가설을 만듭니다.
2. 고객 조사 : 상품 기획자와 디자이너 모두 고객 조사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고객 조사를 그들의 업무 프로세스에 포함시키죠. 차이가 있다면 그 목적인데요. 상품 기획자는 그들이 세운 사업 가설이 맞는지를 검증하고 싶어 하고, 디자이너는 그들이 만든 디자인의 심미성을 검증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조사의 확증편향적 성격을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3. 창의적 아이디어 : 상품 기획자들도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냅니다. 디자이너와 아이디어 창출의 영역이 다를 뿐이죠. 공통점은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창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아이디어는 '스타'라는 수식어도 함께 붙는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생산자들이 그들의 천재적인 역량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습니다.
4. Prototype(시제품) : 상품 기획도 디자이너도 모두 시제품을 만듭니다. 다만 그 목적이 다르죠. 상품 기획에서 만드는 시제품은 비용과 구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함이고, 디자이너가 만드는 시제품은 디자인 요소의 수용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죠.
5. 콘셉트 평가 : 상품 기획자가 만든 콘셉트이던 디자이너가 만든 콘셉트이던 전통적인 생산 방식에서 최종 평가는 결국 최고 의사결정자가 하게 됩니다. 최고 의사결정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상품기획이나 디자인의 전문가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죠. 물론 최고 의사결정자가 고객 수용을 담보할 수도 없습니다.
6. 업무 방식에 대한 확신 수준 : 상품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결국은 그들의 일에 대해 불확실성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내부적으로 훌륭한 콘셉트이라고 평가받더라도 실제 시장에 나왔을 때의 반응을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적어도 기존의 일하는 방법이나 생각하는 방법으론 말이죠. 성공에 대한 불안감은 유지됩니다.
이상의 내용을 본다면 디자이너의 생각법이 기존 생산자 중심 기획자의 생각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상품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지만 디테일과 적용 방법 그리고 사용하는 용어가 다를 뿐이죠. 그리고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면 결국 디자인 싱킹은 디자이너의 사고법이라 정의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 싱킹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제 견해는 '디자인 싱킹은 디자이너의 사고법으로 정의해도 된다.'입니다. 다만, 디자이너와 사고법에 대한 주석이 달려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1. 디자이너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디자이너를 오랜 숙련을 통해 비주얼적 구현 역량을 갖춘 사람으로 정의하는 협의의 개념에서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역량을 가진 사람의 광의의 개념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상품기획자도 엔지니어도 디자이너라 부를 수 있겠죠.
2. 사고하는 방법의 핵심은 공감과 이를 통한 깨달음입니다.
논리적으로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디자인 싱킹을 연역법, 귀납법이 아닌 추론법으로 정의하곤 합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큰 차이는 추론은 근거가 필요하고 그 근거는 디자이너의 가설이 아닌 고객의 사실에 기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객에게서 발견한 사실을 진짜 고객이 되는 빙의에 가까운 공감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깊은 깨달음(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그 과정에서 이미 고객 수용이나 검증의 확신 거친 것들입니다. 재차 고객 검증을 해보지 않아도 아이디어나 콘셉트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죠.
'디자이너도 디자인 싱킹을 배워야 한다.'라는 저의 주장은 디자이너도 고객 공감능력과 이를 통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직관적인 관찰을 통한 '이렇게 하면 어떨까?'의 가설에서 출발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고객을 충분히 그리고 깊게 이해(공감) 한 데서 나오는 통찰과 고객의 근본적인 니즈 해결의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하면 어떨까?' 확신에서 출발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도 디자인 싱킹을 배워야 합니다.
#사진 1. 거리에서 발견한 공유 전기 자전거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생산자, 공급자의 가설을 시장에서 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유 경제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한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 중 하나로 보이는데요. 디자인 싱킹으로 '왜 공유하는가?' , ' 공유의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해본다면 어떤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까요?
#사진 2. 건물의 안내를 위해 설치된 로봇입니다. 로봇이 신기하긴 합니다만 로봇의 설치를 통해서 고객들의 어떤 니즈가 충족이 되었는지는 디자인에 표현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만일 로봇 안내 설루션이 성공적이었다면 모든 건물의 안내는 로봇이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사진 3. 푸트 코트에서 발견한 샐러드 전문점입니다. 테이크 아웃 컵 샐러드를 판매하고 있는 곳인데, 구매 고객의 건강에 대한 소구보다는 오히려 저렴한 가격이 더 큰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건강을 생각해서 샐러드를 선호하겠지?'라는 가설에서 나온 사업으로 보이는데... 샐러드를 사는 사람들의 진짜 니즈는 무엇일까요?
#사진 4. 지하철역에서 발견한 시 항아리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심리적으로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는데, 같은 목적의 가설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 항아리는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사진 5. 쇼핑몰에서 설치된 인스타그램 사진 인화 자판기입니다. 아마도 가설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출력해서 소유하고 싶어 할 거야'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통찰에서 이 자판기를 평가해 본다면 어떨까요?
+ 생각도 디자인의 영역입니다. 생각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당신도 디자이너입니다.
++ 디자이너는 "어떻게"에 대한 생각 이전에 "왜"에 대한 생각도 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