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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Apr 17. 2022

먹는 걸 좋아한다, 요리를 좋아한다, 주방에서 일한다.

<2화-다시는 주방에서 일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조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 있다. '맛있는 음식 먹는  좋아하는 ' '요리하는  좋아하는 ' 끝으로 '주방에서 일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이다. 5  고등학생 시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파인 다이닝의 셰프님을 만났을  해주신 말이 있다. “맛있는  먹는  좋아하는 건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  구분해야 한다”. 지금 돌아보니 이것에서  나아가 요리라는 행위와 요리가 업이 되었을 때를 구분할  알아야 하는  같다. 요리  자체를 좋아한다고 셰프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배워 이를 업으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상당히 고된 삶을   같다.


주방에서 일할 때면 내가 그토록 원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하루 14시간에 달하는 근무시간(아침 7시 밤 10시 퇴근)에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일하는 문화. 특히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서  ‘희망’ 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멋진 삶을 살 수 있겠지'는커녕 수년 동안 이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주방의 열기와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에 지쳐 보였고 노동한 대가에 비해 충분하지 않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분이 이렇게 물으셨다. “요리해서 그 돈 가지고 집 사고, 차 사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누군가는 ‘그런 각오도 안 하고 요리를 업으로 삼으려 했는가?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만 ‘내가 하고 싶은 거면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고 상상했던 것과 실제로 몸에 부딪혔을 때 느껴지는 파동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아니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지도.


주방과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스스로가 가장 힘들었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마치 과거의 행적들을 부인해 결국 내 삶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원했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과정에 대해서 최근 생각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 다른 글에서 한번 집중적으로 다루겠다) 더 이상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왜 다시 주방에서 일하는가?'라면 묻는다면 셰프가 되고 싶고 요리적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서라면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을 거이다. 하지만 음식과 음료가 바탕이 되는 F&B(: food and berverge = 요식업) 사업을 하고 싶다면 실제 종자 연구부터 농사, 수확, 제품 생산, 레스토랑 운영까지 하는 이곳보다 더 좋은 선택지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정확하게 칼질하고, 누구보다 완벽하게 고기를 구워내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술적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의 연속인 인생에서 총체적 경험에 더 많이 집중하고 싶다. 요리라는 행위가 음식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 중 하나이며 중요한 부분이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셰프가 모든 테크닉을 쏟아부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서버가 우리 앞에 음식을 패대기치듯 내놓으면 과연 맛있게 먹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하더라도 철천 부지 원수 혹은 얼굴만 보면 체할 것 같은 직장상사와 함께 먹으면 기분이 좋을까?


 3년 만에 돌아온 주방(=다시는 일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의 첫인상은 아주 정확했다. ‘주방은 맞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걸 직접 사업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자로 재듯 완벽하게 3cm x 3cm로 썰어내고 완벽하게 미디엄 레어로 고기를 굽는 것에 흥미가 없다.


오로지 총체적 경험에 관심이 있다. 총체적 경험이라고 하면 손님이 레스토랑 방문을 위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차에 타는 것까지를 지칭한다. 무엇을 통해 이 식당을 알게 되었고, 어떤 교통수단으로 방문하게 되었는지. 차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오기까지 불편한 건 없었는지. 손님들은 이 공간에 무엇을 기대하고 왔고 우리는 그 기대를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지. 혹은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기대를 심어줄 수 있는지. 어떤 물컵을 사용하고 무슨 비누를 구비해야 우리의 정체성을 들어낼 수 있는지. 음식을 서빙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 것인지 등등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가 하나의 경험으로 뇌에 인지되기 전까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컨트롤해보고 싶다는 야망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요리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 디자인, 회로설계를 다 알기 때문에 애플을 설립했을까?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에서 워즈니악이 "모든 일을 전부 남이 하는데 '왜 스티브 잡스는 천재'라는 기사만 나오는 거냐?"라고 묻자 잡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악기를 연주하지만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하나의 악기를 잘 아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하모니를 창조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하고 싶다


지금까지 경영, 브랜드, 사업에 관해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단순 머릿속에만 남아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들과 상황들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느끼고 곱씹어 볼 수 있는 것이 좋다. 책은 ‘이런 거 하면 재밌겠다’에서 끝났더라면 현장에서는 ‘이 재미난 걸 어떻게 하면 적용해볼 수 있을까?’라고 구상하고 시도해볼 수 있다.


3년 만에 돌아온 주방에서 한 주를 보내면서 크게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요식업 (F&B)에서 통용될 수 있는 좋은 문화란 무엇인가?’


왜 요식업계는 항상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일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또한 왜  상명하복의 문화여야만 하고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워야(3D :Dirty, Dangerous, Difficult )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주말에 장사가 더 잘돼서? 단순히 불 쓰고, 칼을 써서 분위기가 온화하면 사고가 나서? 그들도 누군가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이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만끽하며 사랑하는 일을 품위 있게 자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것을 ‘업의 숙명'으로 뭉뚱그려 무시하고 싶지 않다. 이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아나가다 보면 변화들이 생겨나리라 믿는다.


‘주방과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왜 이곳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주방에 '자의로' 돌아온 스스로를 보면서 내적 충돌이 들었다. ‘아니 왜 맞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시 돌아온 거야? 왜 요식업에서 사업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은 거야?’.


남들보다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치고 빠지는 일회성의 행위들이었다. 한 곳에서 무언가 꾸준히 해본 경험의 유무는 살아가면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느껴졌다. 이것이 없다 보니 삶의 무수한 흔적들을 어떤 맥락으로 이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또 어떤 것이든 1년을 꾸준히 할 수 있으면 2년을 할 수 있고, 2년을 할 수 있으면 3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계절에 흐름에 맞추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농사다. 이곳에서 겨울은 어떻게 준비하고, 봄은 어떻게 맞이하며, 여름은 어떻게 지내고, 가을은 어떻게 수확하고 마무리하는지 동참하고 지켜보면서 오상현의 삶의 봄, 여름, 가을, 겨울나기도 함께 준비하고 싶다.


첫 출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신문을 읽었다 아래의 문장을 발견했다.


“내 실패보다는 남의 실패를 통해 배워라. 많은 사람이 실패를 통해 배우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패에서 회복되기는 너무 힘이 든다. 남의 실패를 공부함으로써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게 낮다"

<매일경제 2022.03.08 / '꾸준히 경제신문 읽어 급변하는 시대 배워야' 구희진 대신 자산운용대표>


실패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과거보다 더 나은 실패를 하고 그곳에서 더 나은 배움을 습득하는 것.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더 나은 선택을 지속하는 것이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대문 사진은 샌프란시스코의 미슐랭 3 스타 Benu이다. 이곳의 음식이야말로 하나의 작품이자 공연이라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매경CEO 특강] 구희진 대신자산운용 대표 / 이화여대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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