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이스탄불> 이 참혹한 순간에도 인생은 내게 이야기를 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씩은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위험한 일은 없으셨어요?”
지금까지 3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행히(?) 페루에서 휴대폰을 한번 소매치기당한 것 말고는 몸도, 마음도, 물건도 빼기거나 다친 적은 없다. 물론 내게도 정말 끔찍한 경험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강도도 비행기 연착도 아닌, 바로 작디작은 벌레 ‘베드 버그’이다.
2주간 이집트에서 시간을 보내고 터키로 넘어왔을 때이다. 10시간가량의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려던 찰나였다. 순간 무엇인가 침대 위와 내 몸 위를 움직이는 게 느껴져 자세히 보니 , 베드 버그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베드 버그와 마주한 순간 웃음만 나왔다. 기뻐서, 웃겨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삶이 너무 어이없고 허망할 때 웃는 그 웃음 말이다. 그렇게 나의 허망한 웃음과 함께 나의 멘탈도 녹아내렸다.( 이때의 심정은 부서진다는 표현만으로 수식하기 부족하다. 진심으로 형체도 없이 아이스크림 녹듯 녹아내렸다)
베드 버그가 뭐냐 하면 바로 '빈대'이다. 얘들한테 물리면 온몸에 물린 자국이 올라오는데 모기랑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부풀고 간지럽다. 게다가 번식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세탁하고, 햇볕에 말려야 한다. 천만 다행히 바로 약을 먹고 , 발라서 그런지, 그렇게 심각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마다 증상은 다른데, 일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때문에 여행을 중단했다는 사람도 있다)
지금 돌아보면 그냥 작은 벌레지만, 그 벌레 하나로, 내가 왜 이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계속 이 여행을 하고 싶은지라는 의문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당시의 심정은 '참혹' 그 자체였다.
왜 그렇게 암담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계속되는 여행에서 느낀 피로감과 외로움이 한몫했지만, 엎친데 덮친 격이 제일 컸다. 빙하를 걷다가 크레파스 사이에 빠져서 간신히 다시 올라왔는데, 바로 앞에 있던 누가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을 밟고 다시 그곳에 빠진 것이다. 즉 제삼자의 영향으로 망연자실한 상황에 두 번이나 빠졌던 것이다.
재밌는 건, 그렇게 이 참혹한 순간에도 삶은 내게 몇 가지 이야기를 던져주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무시하지 말 것
이 일을 겪고 나에겐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가끔 사람들이 여행 중 베드 버그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 들으면, '그깟 벌레 가지고'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만 가려워도 베드 버그를 의심하고, 숙소의 침대 위에 조그마한 검은색이(가령 먼지라던지) 보이면 식은땀이 흐른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겪으니, 끔찍하게 싫어진 것이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 남의 상처나 트라우마에 대해 굉장히 쉽게 생각하고, 쉽게 이야기하고,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상처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깊이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절대 모르고, 알 수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대로 자신의 잣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들어주고, 심심한 위로를 전해주는 것뿐이다.
엎친데, 덮치면 정신 못 차리는 건 한순간이다.
이집트에서 지낼 때, 배드 버그로 인해 이미 한번 큰일을 치렀다. 그런데 그곳을 나서자마자,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인데 누군가가 밀어 다시 그 구렁텅이로 들어가니 정말 답이 없었다. 엎친데 덮치면 사람이 정신 못 차리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허망한 웃음과 함께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지금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본다면 , 대부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거의 유일하게 결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고, 없을 것이다. 내게 그만큼 참혹한데 외롭기까지 한 시간이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2019.10.31
In Istanbul, Tur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