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의 인생 P(현재) 막 일상다반사
4년의 연애가 끝나고 오롯이 혼자가 된 지금. 그가 그립지도 생각이 그다지 나지도 않았다. 좋은 이별을 했다는 생각에 그저 그가 어딘가에서 잘살길 바라며 오만하게도 그의 행복을 빌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오랜만에 마신 맥주에 취기가 살짝 오른 틈을 타 그의 카톡을 염탐했다. 그를 친추하고 프로필을 보기 전 살짝 긴장이 되었다. 뭔가 나에게 숨기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주한 현실. 그와 처음 보는 어떤 그녀와의 웨딩화보. 그리고 선명히 쓰여있는 디데이. 그는 결혼하나 보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와 뭔가 싸우거나 좋지 않은 일을 계기로 헤어진 게 아니다 보니 그저 막연히 남이 아닌 그냥 내 사람으로 생각했었는지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는지 뭔지 사실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르겠지만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대체 언제 새로운 사람을 만난 건지 헤어진 지 이제 1년이고 그와 몇 개월 전까지 연락을 하던 나로서는 이해가 쉬이 되진 않는 상황이었다.
얼마 전 열심히 본방사수를 했던 나의 해리에게 라는 드라마가 그 순간 생각이 났다. 헤어진 남자 친구의 결혼소식을 듣고는 왜 나는 안되고 그 여자는 되는 거냐며 악다구니를 썼던 해리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러게 왜 나는 4년이나 지날동안 안 되는 거고 그녀는 되는 걸까? 그럼 그 4년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부끄럽고 창피한 존재였던 건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맥주에 취한 건지 충격에 취한 건지 그저 혼란스러워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람에 추운지도 모르고 동네를 서성였다.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충격적인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나는 분명 그의 상황들에 지칠게 뻔했기 때문에 그와의 결혼을 생각은 했지만 굳이 바라지도 않았다. 그도 그걸 눈치를 챈 건지 아니면 내가 결혼 상대자로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결혼을 그렇게 원하는 건 아닌 눈치였다. 그런 줄 알았다. 아니 그냥 믿고 싶어서 아닌 걸 알면서도 믿었다.
가끔씩 아기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그의 눈빛에서 아이가 있는 가정을 간절히 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모른척했다.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아기가 있는 가정보다 둘이 함께 하는 게 더 좋다는 그 말을 그냥 믿고 싶어서 믿었다.
그리고 헤어지자는 얘기를 하던 어느 날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기어이 들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소원이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돈이 있었다면 시험관이든 뭐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난 그런 돈도 없었다. 내 몸하나 건사하기 바쁜 삶을 살던 나로선 그냥 꿈같은 얘기였다. 난 그 말을 듣고 그저 알겠다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기는 마치 난 네가 니 나이라서 싫어. 난 네가 여자라서 싫어. 난 네가 너라서 싫어라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내가 싫다는 그를 잡을 이유는 없었다.
어린 여자 만나서 아이 낳고 잘살면 좋겠다.
이런 되지도 않는 덕담까지 하고 헤어졌으면서 지금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이해가 안 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니까.
그의 행복 따위 다 집어치우고 내가 느끼는 이런 배신감이나 좌절감, 그리고 말로 표현이 잘 안 되는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단 어린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나도 인간이니까….
그리고 새벽녂에 맥주를 더 마시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그 프로필의 웨딩화보가 먼저 생각이 났다.
아 맞다 결혼하지 참
이놈의 기억은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보통의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동생병원을 따라갔다가 그 건물에 산부인과를 보고 평소에 좋지 않던 몸이 생각이 나서 별생각 없이 진료를 받게 되었다. 초음파를 하는데 의사가 말하길
“아무래도 폐경의 특징이 너무 많이 보여서 폐경이지 않을까 의심됩니다. 피검사해 보시겠어요?”
하 빌어먹을 이놈의 세상
새벽에 전 남자 친구 결혼에 머리가 멍한데 폐경이라고?
정말 타이밍 참 절묘하다..
그렇게 피검사를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머리가 아득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진짜 나는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진짜 나는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아닌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를 나로서 온전히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을 본다면 없을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우울하다.전남친의 결혼소식을 들은 날 폐경선고라니 너무 가혹한 현실이지만
추억도 존재도 모두 없어지는 그런 기분이지만 또 꾸역꾸역 살아가겠지. 어쩔수 없는게 인생이니까..
진짜 다 끝이네. 내 사랑도 내 여자인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