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P막 에피소드-폐경2화 인생 제2막 폐경

40대 여자의 인생 P(현재) 막 일상다반사

by 작소정

“확실한 폐경입니다.”

오늘 오전에 산부인과에서 들은 얘기다. 난 구질구질 매달렸다.

“혹시 다시 임신을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확률이 있긴 한건가요?”

“세상에 100프로란 건 없으니 컨디션이 좋아져서 호르몬 수치가 오를 수는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지금은 폐경이네요.”

결국 가임기 여성으로서의 능력은 상실했다는 얘기다.

내 전 남자 친구가 나를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더러웠다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기분이 드러웠다.


20대 때도 30대 때도 점쟁이는 항상 아이가 2명이라고 했었는데 폐경이라니…


그렇게 나는 49살에 폐경이 되었다.

사실 1년 사이에 많은 신체의 변화가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얼굴의 화끈거림부터 평생 없었던 발뒤꿈치의 기분 나쁜 각질, 손가락 관절의 이상으로 시작한 온몸의 관절의 이상증세, 갑자기 안 좋아진 노안, 그렇게 기억이 잘 나던 연예인들의 이름 기억상실, 미친듯한 체중증가, 갑자기 늘어난 기미, 설명되지 않는 고혈압 등등 정말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변화들이 말 그대로 휘몰아치는 시기였다.


1년전에 겪은 이별처럼 전조증상도 없이 마음의 준비를 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 훅!! 하고 몰아쳤다.


그저 살이 쪄서 생긴 증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이상했다. 게다가 운동을 하고 식단을 해도 줄지 않는 체지방과 늘지 않는 근육량 등등 이전과는 정말 너무도 다른 몸이 되었다. 나지만 내가 아닌듯한 몸..


알면서도 약간은 아닐 거라고 무시했는데 수치로 땅땅 나에게 폐경이라는 선고를 해주었다.

내 몸에 여성 호르몬은 없다는 선고… 더 이상 나는 여자가 아니라는 선고.. 엄마는 될 수 없다는 선고…


진료실에서 폐경이라는 얘기를 듣고 결과지를 받아 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생님은 본인도 내 나이쯤 그랬다며 감사하게도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셨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다 있지 않은가 라는 묘한 질투심에 그 위로가 위로 같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없다. 아이도 남편도 그 무엇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인데 겨우 하나 있던 걸 가져가 버렸다는 생각에 화까지 났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겨우 하나 남은 이것 까지 기어이 가져가 버리는지 역시 신은 나에게는 없는 게 맞나 보다.

너무 잔인하지만 나는 이제 앞으로 평생 내 유전자를 가진 내 아이를 가질 수 없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상황이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나쁜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라는 생각부터 이런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지나 이젠 진짜 평생 혼자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오만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래도 어쩌겠냐.. 받아들여야지..


어쩌면 인생은 계속 받아들임의 연속인 것 같다.

내가 별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이는 20대를 지나 별은 고사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도 힘들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30대를 지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걸 넘어서서 나는 개똥벌레 라는걸 받아들이는 40대를 살게 되는 것 같다.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죽을 순 없기 때문에…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결국 나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걸 선택하고 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거창하게 인생 제2막이라는 생각까지 하며 어떻게 해서든 나 스스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도록 행복 회로를 돌려본다.


그래 지금까지는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아왔다. 어쩌면 태어나지도 않을 내 자궁 속 내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젠 다 없어졌다. 그냥 나 혼자다. 아이고 남편이고 뭐고 다 없다. 그러면 결론은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거다.


그래!!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아빠는 일찍 죽을 거고 남은 동생을 네가 건사해야 한다는 엄마의 기형적인 가르침 덕에 나는 동생을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말 그대로 키웠었다. 흔히 부모님들이 하듯이 나는 버려진 밥을 주워 먹어도 동생에게는 새로 지은 햇쌀밥을 준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동생을 키우면서 살았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렇게 키워졌으니까…..


그런데 동생은 곧 내 품을 떠났고 나의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곧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그를 위해 내 동생을 대신해서 헌신했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게 진리라고 배웠던 탓인지 나는 그가 돈이 없을때도 아플때도 그에게 헌신했지만 아이를 가지기 힘든 나이의 나는 필요 없다며 보란 듯이 차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폐경의 만신창이가 되었고 또 혼자다.


항상 헌신하고 살았던 나이기에 헌신할 누군가를 찾아야 살 수 있을 것 같다.

주위에는 나밖에 없고


어쩌면 이제 그 헌신을 나에게 돌릴 차례인 걸까?

나를 위해서 맛있는 밥을 차리고 예쁜 그릇에 밥을 담고 나에게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경치를 보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얘기를 듣고 좋은 생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한번도 해보지 않은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마음이 내인생이 내가 너무 가여우니까...


이게 폐경을 맞이한 남편도 아이도 아무것도 없는 여자에게 베푸는 가장 작은 예의가 아닐까?


폐경은 어쩌면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사는 인생 제2막의 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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