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모르게 詩 썼다

“프라이팬 옆에서 익어가는 시 한 편”

by 곽의영

마누라 모르게 시 썼다


글 / 곽의영


마누라 모르게 시를 썼다. 밥상 치우고 나서 몰래 앉았다. 설거지 도와준 척하다가 손 닦으며 노트북을 켰다. 화면 밝기를 낮췄다. 혹시 지나가다 보면 또 한마디 할 테니까. 또 그 詩야 돈은 안 되는 그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커서만 깜빡이게 놔뒀다. 그 깜빡임이 내 심장 같았다. 시는 가끔 도둑처럼 온다. 누가 보지 못할 때 조용히 마음을 털어놓게 만든다. 마누라는 내가 시 쓸 때 표정이 이상하다고 한다. 혼자 웃다가 찡그렸다가 허공을 본다나. 그래서 시보다 내가 더 걱정된다고 했다. 오늘은 그런 얼굴 들키기 싫었다. 그래서 몰래 썼다. 주제는 마누라. 그건 비밀이다. 시를 다 쓰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숨기려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이 드러났다. 프라이팬에서 기름 냄새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그 사이로 내 단어들이 익어갔다. 시란 참 묘하다. 혼자 쓰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다. 노트북을 덮으며 속으로 말했다. 오늘도 들키면 그게 또 시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