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용기를 성공의 동기로 만드는 법
저는 기사나 뉴스를 잘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보게 되면 부정적인 내용들이 더 많고 그로 인하여 저 자신도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서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긍정적인 내용과 정보를 수용 혹은 기억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내용과 정보에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오래 기억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도 생존 본능에서 기인합니다. 인류의 조상이 살던 시절에는 부정적이거나 위험한 상황 자체가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생존 본능과 안정을 위하여 탑재된 우리의 본성으로 나쁜 정보와 기사에 더욱 큰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론 매체를 다루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하여 두렵거나 위험하거나 부정적인 내용들을 기사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살인, 방화, 사건, 사고, 자살 등의 부정적인 기사들이 더 많이 보이고 노출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우리는 더 불안해지고 더 부정적으로 변하며 두려워지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그 정보나 기사를 차단하기 위해 잘 보지 않습니다. 물론 보지 않더라도 주변의 지인들과 대화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경우(그렇더라도 그 정보를 흘려들으려고 노력도 합니다. 어렵게 사는 것 같죠?)가 있기에 굳이 찾아보지 않습니다.
서언이 좀 길어졌습니다. 오늘 집필할 내용의 주된 부분과 연결이 되었기에 제 생각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죽음'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마치 종교 지도자 같은 질문이라 조금 어색하긴 합니다만, 죽음에 대해서 당당하거나 두려움이 일절 없으신 분 있으신가요?
사람의 두려움 중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이자 두려움의 끝판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심리학자와 철학자, 인류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의 두려움만 이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각종 기사들이나 뉴스들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사건 들 중에 '자살(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들도 가끔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일 수도 있고, 어느 기업가인 경우도 있고, 일반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두려움의 최상단에 있는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일까요?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용기는 과연 어떤 용기일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이라면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용기'는 아마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돈의 속성'이라는 책을 쓰시고 미국에서 도시락 사업으로 거부가 되신 스노 폭스사의 김승호 회장님이 계십니다. 그는 이미 몇 천억의 자산가이며 사장님을 가르치는 사장님으로 유명하시죠.
그 김 회장님은 자신의 저서인 '돈의 속성'에서 스무 살 때 잘 나가던 사업이 크게 실패하고 자살 직전까지 같다고 합니다.
자살의 순간에 다시금 힘을 내어 그 용기를 연료로 지금의 크나큰 성공을 해내었습니다.
그 김승호 회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미 큰 성공을 거두 신 성공 기업가 또 한 분이 계십니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와 '웰씽킹'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집필하신 켈리 델리사의 켈리 최 회장님이십니다. 그녀는 유럽에서 초밥 도시락 사업을 시작하여 몇 천억의 자산을 만드신 분이죠.
켈리 최 회장님도 그녀의 저서인 '웰씽킹'에서 비교적 이른 성공을 거두었으나 실패로 인하여 나락으로 떨어졌고, 자살을 하기 위해 다리 위로 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홀로 남겨질 어머니와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고 자살을 포기하고 그 용기로 새로운 삶에 다시금 도전하여 현재의 거부를 이루어내었습니다.
이렇듯 성공 대가와 사업가들은 아주아주 침울하고 어두운 골짜기, 이른바 '죽음의 골짜기'까지 떨어졌고 그 순간 '자살과 죽음의 생각'을 했으나, 그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는 마음을 멈추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와(죽을 수 있는 용기를 새로운 도전에 사용함으로써) 크나큰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용기'야말로 가장 큰 용기이자 성공할 있는 가장 위대한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의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상황과 내용, 그리고 자신이 처절했던 경험들을 저술하였습니다.
내용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살고자 하는 동기를 내려놓고 죽음의 문으로 나아갔지만, 저자를 포함한 몇몇의 생존자들은 '살아야 하는 강력한 동기(가족, 친구, 자신의 사업 등)'를 가지고 마침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네, 살아야 되는 동기만을 가지면 죽음의 상황에서도 살 수 있고, 그 동기와 용기가 더 강력한 삶의 변화와 변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최근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연인'이라는 사극 드라마가 있습니다. '남궁민'씨와 '안은진'씨가 열연을 펼친 드라마이죠. 유재석 씨와 히하 씨가 카메오로 나와서 이슈가 된 드라마이기도 한데요.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병자호란'이후 인조가 청에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치욕스러운 항복을 한 후 조선의 포로들이 청에 끌려가 인간 이하의 고역을 치르고 죽음까지 맞이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그 드라마 극 중 내용 중 청나라 포로상들이 조선 사람들을 가둬서 옥살이를 시키거나 거래하거나 자신들의 소유로 치욕적인 삶을 살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며 그 포로들에 대한 본토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저렇게 오랑캐에게 치욕적인 삶을 사는지 모르겠다.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는가? 오랑캐에게 더럽혀져 가면서 왜 삶을 택하는가?'
주인공 이장현(남궁민 역)은 이에 대하여 한 마디를 합니다.
'살고자 하는 그 순수하고 강력한 마음이 왜 문제인가? 살고자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들은 그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치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대사와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반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살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와 용기, 간절한 마음'이 죽음 바로 앞에서 살아 낼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이자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용기가 더 큰 결과와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성공 대가들의 경험도 있고요.
만약, '끝까지 살고자 하는 동기'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로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전환시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하찮은 기차 통신 전보원 시절 해고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임의로 사건을 처리했고, 그 일로 인하여 크나큰 사고를 막았습니다. 결국 그는 해고당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일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세계 최대의 철강왕이 되었습니다.
링컨 대통령도 남북전쟁의 불리한 여건과 상황 속에서 '죽음'보다는 '생존'을 믿었고, 반전을 만들고 결국 미국 최고의 대통령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세상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하다 보면 무언가를 엄청나게 반복적으로 해내어야 하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잠이 모자랄 수도 있고, 오랜 공부로 엉덩이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은(?) 그 무언가를 참아내어야 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죽음보다 두렵거나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러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죽지도 않겠죠.
'눈 딱 감고 뛰어내리면 된다는 그 생각'이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용기입니다. 강심장이면서 철저한 성공 거인들조차도 잘 해내지 못하였던 것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었습니다.(실제로 죽음이 두려워서 다시 산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말도 안 되는 최고의 용기'를 자신의 미래와 성공에 쏟아부으십시오!
반드시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얻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