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주님의 선물!
몇 년 전, 아내가 온라인에서 신발 이미지 하나를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자기야, 이거 예쁘지 않아?"
처음 봤을 때 디자인이 꽤 독특하고 화려했습니다.
그 당시엔 '영포티'라고 놀림당할 일도 없던 때라 제법 인상 깊게 다가왔던 신발이었죠.
하지만 자꾸 보니 예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커 보였습니다.
농구화의 일종이라 아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기분 좋게 사준다고 할 때, 기쁜 마음으로 사달라고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으니까요.
주는 기쁨이 전해질 때 냉큼 받아주는 마음, 그것이 따뜻함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혹은 그 독특함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배송이 기다려졌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마음만큼 택배는 빨리 오지 않더군요. 기다릴 땐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법이니까요.
드디어 신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박스 안에는 웬 '항공모함' 같은 신발이 고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실물로 마주한 신발은 특유의 화려함이 살아있었지만, 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농구화로 제작된 신발이니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제가 그 점을 간과했나 봅니다.
아무튼 존재감만큼은 확실한 멋진 신발이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매일 신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크고 화려한 디자인 탓에 점점 손이 가지 않게 되더군요.
가끔 눈에 띄면 꺼냈다가도 이내 도로 신발장 안으로 집어넣곤 했습니다.
아내의 고마운 마음은 알지만, 나이도 신경 쓰이고 너무 튀는 것 같아 신발장 안에 모셔두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그 신발은 잊혀갔고, 다른 신발들이 제 발을 대신 감싸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아주 많이 내렸습니다.
평소 눈이 오면 저는 경량 등산화 느낌의 트레킹화를 신곤 했습니다.
며칠째 이어진 강추위로 눈은 녹지 않았고 땅도 꽁꽁 얼어붙어 매일 그 트레킹화만 신고 다녔죠.
그런데 문득 그 신발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빙판길이 많아 밑창이 미끄러운 신발은 위험했기에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이 신발, 저 신발 고르던 중... 신발장 구석에서 존재감 확실한 그 친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한번 신어 볼까?'
마음속에서 질문이 솟아올랐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외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며 생각했습니다.
'그래, 뭐 어때. 이렇게 미끄러울 땐 바닥이 넓고 안정감을 주는 신발이 최고일지도 몰라.'
돌이켜보니, 그때 마음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바로 성령님의 세밀한 속삭임이었습니다.
신발장에 잠들어 있던 그 신발을 꺼내 발을 밀어 넣었습니다.
"어? 이 착화감은 뭐지?"
예전에 신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발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고, 신고 나니 디자인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예뻐 보였습니다.
'이 예쁜 아이를 왜 이제야 알아봤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여자 후배가 제 신발을 보고 한마디 건네더군요.
"선배님! 신발 정말 멋진데요? 예뻐요! 선배님이랑 참 잘 어울리세요."
"그래? 나이 든 아저씨가 신기엔 좀 과하지 않아?"
"아니요, 전혀요. 정말 멋지세요!"
그제야 이 신발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신발이 조금 크긴 해도 아랫부분이 넓고 평평해 균형감과 안정감이 탁월했습니다.
덕분에 눈길과 빙판길에서도 정말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죠.
밑창의 미끄럼 방지도 확실해 눈 덮인 경삿길조차 마음 편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걸어가야 할 미끄러운 눈길을 미리 아시고, 그 신발을 예비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주님의 예비하심과 그 깊은 사랑을요. 모르기에 미뤄두었고, 주시는 사랑을 모른 채 외면했습니다.
그 진정한 사랑을 몰라보았기에 마음속 속삭임도 듣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며, 가장 좋은 때에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을요.
독특한 디자인의 커다란 신발이 제게 그 진리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유일하고, 위대하며,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