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아래의 통증, 그리고 기억해야 할 이름들

작은 고통에서 떠 올린 큰 헌신

by 열정후니

가방을 열려고 지퍼를 잡아당기던 순간이었습니다.
지퍼 손잡이의 뾰족한 끝이 손톱 아래를 파고들었습니다.


“아…”


숨이 턱 막힐 만큼 아팠습니다.
이내 붉은 피가 손톱 밑에서 조용히 스며 나왔습니다.


왜 하필 그곳이었을까.
왜 그렇게 깊이 들어왔을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통증 사이로,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몇 해 전, 아내와 초등학생이던 딸아이의 손을 잡고 찾았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아이에게 역사를 책이 아닌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배움’이라는 단어로 담아내기엔
너무도 무겁고, 너무도 차가운 장소였습니다.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랐습니다.
낡은 벽과 좁은 창, 삐걱이는 나무 바닥 위에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곳.
나라를 되찾겠다는 이유 하나로
젊음과 생명을 내어놓아야 했던 자리.


1인용 고문 형틀.
절대로 편히 누울 수 없도록 만들어진 관 모양의 감방.
그리고 차마 오래 바라볼 수 없었던 고문 도구들.


그중 하나가 유난히 제 마음에 박혀 있었습니다.
대바늘인지, 대못인지 모를 날카로운 도구.


설명문에는 담담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손톱 아래에 그것을 찔러 넣어
자백을 강요하고 거짓 증언을 받아냈다고.


문장은 짧았지만,
그 문장 뒤에 숨겨진 비명은
차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도구의 형상은
제 기억 어딘가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지퍼 끝에 살짝 찔린 이 작은 통증이
그 그림자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이 정도의 아픔에도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을 하고 있는데.
손톱 아래로 대못이 밀려 들어오던 순간,


그분들은 어떤 숨을 쉬셨을까요.
이를 악물고 참았을까요.
아니면 조용히 눈을 감았을까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손톱 밑에서 맺힌 작은 피방울을 바라보다가
괜히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평범한 하루를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다가오는 삼일절을 생각합니다.


깜깜한 형무소의 밤,
차가운 바닥 위에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셨을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끝까지 나라를 품고 있었던 그 마음.


오늘, 제 손톱 아래의 작은 상처가
그분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 보게 합니다.


자유는 조용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작은 통증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평범한 하루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손을 모으듯,
마음이 조용히 숙여지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