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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Feb 10. 2022

일 인분의 외로움

개 같은 서른 하나

                          



 오휘명 작가의 책 제목 『일 인분의 외로움』처럼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감당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게다가 내가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는 건 몰랐던 사실이다.     

 

 지난 2월 데이비드 자민 전시회에서 ‘결합’이란 작품을 만났다. 작품 속 남녀는 소파에 앉아 편안해 보이는 자세로 서로에게 온전히 기댄 채 하나인 듯 껴안고 있었다.    


  

 혼자가 되고 자못 불안했다. 혼자를 완벽한 하나의 모습이라 생각하지 않아서다. 꽤 오랜 시간 완전한 하나의 모습을 커플이라 생각했다. 유독 이 작품 앞에 오랜 시간 머물다 못해 사진을 찍고, 포스터를 사 온 이유는 내가 바라던 안정된 모습이라 서다.     


 한 번은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그런 거 같다고 답했다. 어릴 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아빠 직장이 동네에 있어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아빠를 찾아갔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쌓이다 못해 넘쳤다.      


 독립해서 살아본 적 없고, 연락할 친구가 없어 외로워 본 적도 없다. 스무 살 이후 공백기 없던 연애 기간도 한몫했다. 약속 없는 주말이 없었고, 연락 없는 핸드폰 역시 익숙지 않다.


 외롭다는 감정은 이별과 함께 찾아왔다. 어느새 친구들은 주말을 같이 보낼 남자 친구나 남편이 있었고, 업무 외에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퇴근 후에 집에 오는 게 어색했고, 기념일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차근차근 내 몫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았다. 안 해본 일부터 시작했다. 혼자 뮤지컬 보러 가기. 유튜브 알고리즘의 인도하심 덕에 최재림·민경아 배우의 뮤지컬 <시카고>를 예매했다. 십만 원 상당의 뮤지컬을 일정 맞춰 같이 보자고 제안할 친구를 찾지 못한 탓도 있다. 다행히 혼자 온 관객은 많았고,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줬다. 꽤 괜찮은 혼자의 경험이었다.      


 한번 해보고 싶던 필라테스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1대 1 수업으로 결제했다. 5개월을 다니니 한 학기 등록금 버금가는 금액이 나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다 대 일 수업에 가서 헤매지 않고, 필라테스에 재미를 느꼈으니 되었다.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 알고 지낸 모임을 넘어 인스타로만 지켜보았던 책 읽기 모임에 참여했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오랜만에 내 또래와 이야기하니 절로 신이 났다.      


 올 초 목표에 ‘책 쓰기’를 같이 적었던 언니가 책을 내자, 황급히 들어간 책 쓰기 모임 덕에 연말을 집필에 마음이 모두 뺏겨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데 왜 지금껏 전 남자 친구들을 괴롭혀왔을까. 책에 넣을 사진이 필요하다는 적당한 구실 덕에 난생처음 프로필 사진을 찍었고, 굉장히 만족하는 중이다.  

    

 쉬는 날은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같이 휴가를 내준 언니 덕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고, ‘나랑 여름휴가 보낼래’란 한마디에 냉큼 휴가계를 내준 이들 덕분에 알차게 보냈다. 직장 동료들과 파주로, 강원도로 떠났고, 친한 지인들과 루지를 탔다. 노량진 해산물 시장을 처음 가봤고, 보고 싶었던 공연 덕분에 크리스마스를 화끈하게 보냈다. 한 남자를 챙기는 대신 느슨해진 인연들을 꽉 붙잡았다.      


 이토록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여전히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을 해소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외로움을 어떻게 해소하냐’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에 언니는 ‘결혼하더라도 외로움은 해소할 수 없을 테니 지금부터라도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오빠는 결혼하면 외로움이 해소된다고 했고, 우린 그게 결혼하고 상관있는 외로움이 아니라고 한참을 투닥거렸다.


 혼자서 오롯이 견뎌낼 수 있을 때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고들 한다. 흠, 부지런히 연습해야겠다.


                                            




   인생에 깊이가 깊어지는 데에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이 제 발로 찾아오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어있을 뿐. 하지만 얼마나 좋은가, 젊음은 내 곁을 떠나고 있지만 깊은 성숙이 나에게 도래했음이. 진짜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 느끼지 못한 채로 세상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서 살았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먹구름이 모두 지나간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든다. 맑은 날 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듯이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곽정은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포르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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