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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Feb 28. 2022

떼 내고 싶은 ‘노력형’ 딱지

개 같은 서른 하나 


 노력하지 않아도 타고난 이들이 부러웠다. 중학생 때였나 예쁘게 생겼는데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부러우면 질투하는 성격이라 그런 친구가 몇 없었는데 그 친구는 특이 케이스였다.      


 그날은 선생님께 시험 점수를 보고하기 위해 줄 서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던 그 친구는 내게 몇 점을 받았냐고 물었다. 80점 정도였나, 높은 점수는 아니었으나 공부를 안 한 점수는 아니었다. 그러자 친구는 그 예쁘고 동그란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며 "넌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데 왜 그 점수가 나왔어?"라고 물었다. 


 차라리 악의라도 있었으면 덜 상처받았을까. 정말 궁금하다는 듯 순수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크게 상처받았다.          


 그렇다. 내 인생은 노력으로 점철됐다. 고등학생 때 수학이 젬병이었다. 엄마는 그런 날 포기하지 않고 엄친아와 같은 반에 등록시켜줬다. 일주일에 두 번 수학학원에 갈 때면 숙제를 싹 풀고, 오답 노트를 만들어 혼자선 도저히 못 푸는 문제만 추려갔다. 엄친아는 수업시간에 숙제했다. 그가 숙제하는 동안 나는 오답 노트에 적어온 질문을 했고, 그 친구가 다 풀고 틀린 문제 두세 개를 질문하고 나면 수업이 끝났다.    

  

 우리가 일 년 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실력 차 덕분이었다. 나의 성실한 노력으로 끌어올린 능력치와 그의 타고난 천재성에 게으름이 얹혀 이뤄진 기이한 수평. 그 덕에 둘이 듣는 수업을 과외처럼 누렸지만,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탓에 난 그와 일 년 동안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 이후 신기하게도 우린 같은 대학에 갔다.      


 좋아하는 과목도 예외는 없었다. 사투리를 쓰던 언어 선생님은 날 보며 안타까워했다. 모의고사 때마다 내 성실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언어 점수는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널뛰기했다. 펑펑 우는 날 앞에 두고 선생님은 "이렇게 성실하게 하는데 얘를 우짤꼬. 넌 나중에 정리만 잘되면 술술 풀릴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쯤 되니 ‘노력형’이란 꼬리표가 숨기고 싶을 만큼 미웠다.                


 타고난 천재가 되고 싶었다. 대학생 때 마음만 먹으면 천재인 척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공부 하나도 안 하고 논 거 같은데 점수 잘 나오는 얄미운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험 기간이 시작되자 난 도서관 4층에 자리를 잡았고 선배와 동기들을 주구장창 마주쳤다.     


 한 번은 강의를 기다리며, 지금은 대기업에 들어간 선배와 전과했다는 낯선 동기와 셋이 복도에 서 있었다. 선배는 상대에게 날 이렇게 소개했다.      

"얘 진짜 열심히 해, 얜 안 봐도 A+이야, 친하게 지내".      

 칭찬이었겠지만 난 그때 ‘노력형’의 본체를 들킨 것 같아 한사코 부정했다.      

"아녜요, 나 진짜 요즘 공부 안 하는데 무슨 A+이야 말도 안 돼" 당시 선배는 A를 받았고 난 B+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 같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준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노력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성실하게 정리한 강의 노트를 숨기기 급급했던 이유는 내 노력의 결과를 믿지 못하는 데 있었다. "쟤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왜 그래"란 말이 귀에 맴돌았다.           


 물론 타고 난 두뇌 덕에 게을러도 되는 이들이 내 노력을 날름 가져가는 게 싫은 마음도 있었겠지. 왜 없었겠는가, 그동안 당한 게 산더미인데. 그래도 전자의 마음이 훨씬 컸다.      


 살다 보니 이상하게도 내가 숨어서 노력할 때는 받지 못했던 응원을, 대놓고 노력할 때 넘치도록 받았다. 어차피 숨긴다고 숨겨지지도 않는 본체였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들키는 거, 내 맘이라도 편하자 싶어 대놓고 티 내기로 했다.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쩔 거야 어차피 내 영역 밖인걸. 차라리 내가 상처받을 말을 차단하는 식으로 주변 입단속을 시키는 게 빠르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한 친구들은 내 노력을 깎아내리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고, 은근히 비꼬는 이들을 더는 내 곁에 두지 않으니 사회에 나와 ‘노력형’이라 상처받은 일은 별로 없었다.     


 아직도 TV에서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본인만 캐스팅됐다는 배우나 아이돌 인터뷰가 나올 때면 얄미워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정작 내 주변에 그런 일이 벌어질 땐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 각자 그릇에 맞는 자리가 있을 테고 각자의 고민이 있겠지. 아니면 용써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에세이 '개 같은 서른 하나'를 읽고 지인이 전해온 서평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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