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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Feb 26. 2022

마지막 수업

개 같은 서른 하나 

                          

 이별은 잔정 많은 나에겐 곤혹스러운 일이다. 오늘은 6월 16일 시작한 엘츠필라테스와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5개월간 매주 수요일, 토요일 꾸준히 나갔다. 처음엔 18번 신청하고 너무 좋아, 한 번 더 신청했다. 서비스로 수업을 한 번 더 잡아주신 덕에 총 37번을 나갔다.      


 5개월 대장정의 결과가 거북목이 반듯해졌다거나 살이 5kg 빠졌다거나 비뚤어진 골반이 똑바르게 잡히는 등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다. 


 다만 이전보다 건강해졌고, 자세가 바라졌고, 운동에 대한 재미를 붙였다. 이제 다대일 수업으로 옮겨가니 지금 여기서 느꼈던 밀착 케어는 누리지 못할 거다.     

 

 일대일 수업은 비싸지만 모든 게 좋았다. 한 번도 일대일 수업을 해본 적 없는 내겐, 발가락에 힘이 잘못 들어가는 것까지 봐주는 선생님 덕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정석대로 바르게 50분을 가득 채워 운동했다.      

 마지막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께 어떤 말을 할까 우물댔다. 


선생님은 내가 운동을 그만두고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자세와 운동을 가르쳐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보다 10분 더 늦게 끝나,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나와 선생님과 셀카를 남기고, 날 안아주는 선생님께 말했다.

 사실 여기를 처음 온 날, 오랜 연애 끝에 이별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나를 방치한 지 6개월 된 상태였다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처음 도전해본 게 필라테스 수업이었다고. 수업 때마다 선생님과 대화는 거의 없었지만 자세 하나하나를 봐주신 덕분에 내 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됐고, 열심히 움직여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열심히 하면 옆에 서 있는 늘씬하고 바른 자세의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 기대도 했다고 고백했다.         

 

 정말 고마웠다고, 이제는 다시 예전에 나로 돌아와 수업 중에 농담을 건넬 수 있게 됐고 이것저것 도전해볼 힘이 생겼다고. 이 모든 건 꾸준히 운동해온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전혀 몰랐다며, 초반에 말이 별로 없어서 그저 친해지는데 속도가 필요한 회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언제든 근처 지날 때면 커피 마시자고 연락하라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마지막에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다 전했으니 됐다. 마지막 순간 후회 없이 맘속 얘기를 다 털어놓고 헤어지는 게, 내가 택한 이별 방식이다.               


지난 5개월 동안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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