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내와
무릎을 내리고 아이와 눈을 맞추는 엄마와
교복으로 한 껏 멋을 낸 중학생들의 소란스러운 웃음 사이로
급할 것 없는 백수쟁이의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세련된 건물도, 규칙적으로 심긴 나무도,
누군가 대접한 밥상을 즐기는 길냥이도
하나같이 그 자리에서 존재 증명해.
천천히 걸으며 두리번거렸어.
내가 지금 무중력 상태란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의식하면서 말이야.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야
더군다나 우울한 것도 아니지
그냥 천천히 걷는 것뿐이라고
너희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고
나는 나로서 나의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너희들의 걸음보다 반보 정도 천천히 걷고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