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문득.
낯설지 않은 바람을 만난다.
그때와 같은 세기로, 같은 온도로, 같은 냄새로.
코 끝의 시림도 살짝 돋은 소름도.
예고 없이 한 순간에 찾아와
순식간에 기억을 추출한다.
잘게 쪼개어진 기억들은
몸속 깊이 지워진 듯 숨었다가
주문처럼 조건들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하면
예고 없이 튀어나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무책임한 기억은 오래 머무르지도 않고
다시 어딘가로 숨어든다.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잠시 지나가는 가을의 선선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