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래를 춤추게 하는 작은 칭찬의 힘에 대하여
이렇게 추운 날에는 따뜻한 음료를 제법 마시기도 하지만
저는 대체로 차가운 음료를 좋아해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지 않기에 '얼죽아'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얼어 죽기 전까지는 아이스음료를 고집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차가운 음료를 마실 때
어금니 쪽에 욱신거리는 치통이 동반되고는 했습니다.
이가 썩었나 싶어 어금니를 보니 충치가 살짝 보이는 듯해요.
치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치과는 괜스레 가기가 싫습니다.
모든 병원이 그렇지만 치과는 특히 더 가고 싶지 않아요.
어금니가 덜 욱신거렸다면 조금 더 버텼겠지만,
찬 음료를 마실 때마다 욱신거리는 이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치료를 받을 치과를 찾기 시작합니다.
좀처럼 친하지 않은 치과에 갈 때에는 병원을 고르는 일에 무척 신중해져요.
병원에서 모난 기억이 생긴다면,
가뜩이나 친하지 않은 치과와 더 멀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집 근처의 치과를 검색하다가 후기가 무척 좋은 치과를 발견했습니다.
네이버 후기는 물론 카카오 지도의 후기마저도 5.0점이었어요.
'까다로운 지도 어플에서도 만점을 기록하는 치과라니!'
도대체 어떤 치과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균 별점 1.6점인 고객이 평점 5.0을 주는 치과.
"여기로 정착하겠다"는 최고의 칭찬을 듣는 치과는 어떤 곳일까?
먼 곳으로 이사를 갔음에도
원장님을 보기 위해 자전거라도 타고 찾아오는 치과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자세하게 후기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이 K치과가 궁금해집니다.
이 정도면 이가 아프지 않더라도,
원장님의 진료가 궁금해서라도 K치과에 가보고 싶었어요.
사실, 병원이라는 곳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따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거든요.
목소리나 말하기에 대한 코칭을 하는 일도 하고요.
대규모의 강의나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소개글처럼
목소리를 무기 삼아 말하기를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랬던 제가 잠시 마이크와 멀어져
병원에서 근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제가 하는 일들이 모두 중단되었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제게
사회적 거리 두기는 제가 하는 모든 일의 거리 두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1000평이 넘는 규모의 대형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어요.
의학지식이 전혀 없던 제게 병원이라는 근무환경은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지만 그 세계 속에서 저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을,
지혜로운 말하기가 그 어떤 지식보다도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거든요.
그렇게 가장 화려한 무대 위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잠시 내려와
700분의 환자분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었던 시간들은 아마도 앞으로 제 인생에서
'대화'와 '말하기'에 대한 가치를 흔들림 없이 지탱해 줄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 박진주 님께서 연기한 간호사 연기를 보고
무척이나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 아파요, 따-끔" 할 때의 그 말투 때문이죠.
어디선가 만나본 적 있는 간호사 선생님 같거든요.
병원에 가면 걱정하는 듯 걱정하지 않는,
친절한 듯하지만 전혀 친절하지 않은 말투의 선생님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며 웃을만한 명연기입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왜 그런 말투를 쓰게 되었을까요?
저도 근무해 보았지만 병원이라는 공간은
공간의 특성상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이신 분들을 자주 뵙습니다.
아프고 짜증 나고 불편하고 힘들 때.
그리고 걱정되고 두려울 때 병원을 찾아오기 때문이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란 참 신기하게도 전이가 됩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을 환영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기피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감정이 내 감정으로 전이가 되기 때문이죠.
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반복해서 만나다 보면 점점 지치고 버거워집니다.
그렇게 어느 시점이 되면 영혼을 빼고 일하는 편을 택하게 되죠.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에너지가 와도 크게 요동치지 않도록요.
병원에서 근무하는 여러 선생님들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하시는 텔레마케터 상담사님들의
영혼 없는 친절한 말투의 원인은 이런 환경 때문일 겁니다.
접수를 해주시는 선생님도 친절합니다.
치아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주시는 선생님도요.
치아를 DSLR 카메라로 찍어주시는 선생님도.
스케일링을 해주시는 선생님까지도요.
마치 병원 전체에 '친절함'이라는 바람이 부는 듯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친절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던 찰나
원장님의 진료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전 직원이 이렇게 친절한 것도.
모든 리뷰가 그렇게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요.
원장님의 커뮤니케이션에 그 답이 있었습니다.
스케일링 담당 선생님께 치료를 받은 후,
원장님의 진료가 시작됐습니다.
"아 해보실까요?"라는 말과 함께
저의 치아 상태를 확인한 원장님의 첫마디는 "오, 잘했네요."
원장님은 칭찬을 이어갔습니다.
"정말 꼼꼼하게 잘 제거했네. OO선생님 잘했어요"
초록색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던 터라
스케일링 담당 선생님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선생님께서 칭찬을 듣고 무척 기뻐하신다는 건 알 수가 있었습니다.
뿌듯하기도 쑥스럽기도 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그 말에서 선생님의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졌거든요.
제가 칭찬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 역시 기뻤습니다.
저는 꼼꼼하다고 칭찬을 받는 선생님께 스케일링을 받은 환자였으니까요.
사실, 저는 그때 스케일링 치료를 받으며
잇몸 쪽이 찢어진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건 아닌가 조금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괜찮아지더라고요.
'선생님이 꼼꼼하게 해주려고 하시다가 그랬나 보다' 싶어서요.
누군가에게 건넨 칭찬이 또 다른 이의 불안함을 잠재운 순간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스케일링 담당 선생님을 칭찬하신 후 제게 물었습니다.
"스케일링받으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년 반 정도 된 것 같아요"
"와, 훌륭한데요! 양치를 잘하시나 봐요, 치아 상태가 훌륭해요!"
원장님께서는 제게도 칭찬을 건네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치과에 오면 매번 양치를 잘해야 한다는
꾸중만 들었지 칭찬을 받는 건 처음이었어요.
원장님께서는 치아를 꼼꼼하게 보시면서
칭찬 진료를 이어가셨습니다.
"1년 반 만에 오셨는데 이 정도면 치석이 거의 없는 거예요. 좋은데요?
음.... 사랑니도 예쁘네요. 아주 예쁘게 잘났어요."
마치 어린아이를 정성스럽게 살피는 부모님처럼.
치아를 살펴볼 때마다 원장님은 리액션을 하듯 칭찬을 하셨죠.
칭찬으로 가득했던 원장님의 진료는
"궁금하신 점 있으실까요?"라는 물음과
"치료받느냐고 고생하셨어요."라는 인사로 끝이 났습니다.
정말 5점 만점에 5점인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칭찬 진료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에 1년 반 후에 병원에 왔을 때에도 칭찬받을 수 있게 양치질을 더 잘해야겠다'
환자로 하여금 양치를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만들다니!
정말 5점 만점에 5점을 줄 수밖에 없는 진료 아닌가요?
높게 뛰는 고래 벽장식 아래 있는 이 남자는
켄 블랜차드 컴퍼니의 회장, 켄 블랜차드입니다.
이 남자는 비즈니스 컨설턴트이자 무려 88건의 책을 집필한 유명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집필한 책 중 하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책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 말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마치 속담처럼 알고 있는 말이지만,
사실 이 말은 책의 제목입니다.
책의 제목이 속담처럼 통용될 정도라니.
얼마나 오랜 스테디셀러인지 짐작이 갑니다.
책에서 한 기업의 중역인 웨스 킹슬리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그에게 인간관계는 무척 어려웠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플로리다 출장에서 범고래쇼를 관람하게 됐어요.
그리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5000파운드, 무려 3톤이 넘는 범고래가 조련사의 지시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거든요.
웨스는 궁금했을 겁니다.
'범고래는 포악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게다가 몸집이 거대한 범고래가 어떻게 조련사를 따를 수 있지?'
그리고 생각했을 겁니다.
'나는 사람 하고도 소통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저 조련사는 어떻게 범고래와 소통을 한 거지?'
웨스는 쇼가 끝난 후, 범고래 조련사 데이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묻죠.
데이브는 웨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까요?
뒤통수치기 반응이란, 다른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 부분을 지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일을 망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잘못하는 즉시 그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내가 너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뒤통수치기 반응'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말해주듯,
잘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잘못했을 때에는 기다렸다는 듯 그 부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혼을 내며 자신의 우위를 드러내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겁니다.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듭니다.
잘한 일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잘하지 못한 일에는 득달같이 화를 내니까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케일링 치료를 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꼼꼼하게 하지 못했을 때 바로 다그치는 치과 원장님이 그런 예입니다.
환자의 치아 상태가 좋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충치가 많은 환자에게 양치 제대로 하세요라고 혼을 내는 원장님이 또 다른 예겠고요.
만약, 인간관계가 어렵다면,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것을 불편해하고 내 앞에서 유독 위축이 된다면.
누군가가 잘 한일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군가가 잘못한 일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보세요.
뒤통수치기 반응을 고집하는 사람 곁에서
기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바꾸고 싶다면,
뒤통수치기 반응을 버리고 고래 반응을 익혀야만 합니다.
고래 반응은 무엇일까요?
뒤통수치기 반응과 반대로 사람들이 잘한 일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뒤통수치기 반응이 잘못한 일을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면,
고래반응은 눈에 불을 켜고 잘한 일을 찾는 것이죠.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바로 고래 반응입니다.
웨스가 조련사에게 어떻게 범고래를 이렇게 조련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을 때.
조련사는 "춤을 추는데 필요한 행동에만 주의를 기울이세요"라고 답했습니다.
범고래의 실수에 집중하기보다,
범고래가 잘했을 때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포악하기로 유명한 범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것,
3톤이 넘는 범고래가 작은 인간을 따르게 만드는 힘은 긍정적인 태도와 칭찬에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고 싶으신가요?
5점 만점에 5점을 받는 커뮤니케이션을 익히고 싶나요?
그렇다면, 뒤통수치기 반응을 버리고 고래 반응을 선택해 보세요.
상대방의 실수에 집중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칭찬할 요소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칭찬할 요소를 발견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그 즉시 칭찬해 주세요.
작은 칭찬이어도 괜찮습니다.
"스케일링 정말 잘했네요."라는 격려와 칭찬에 힘입어,
다른 환자들에게 더 꼼꼼하게 스케일링을 하게 될 그 선생님처럼.
"1년 반 동안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하네요"라는 칭찬의 말에,
다음 진료 때에도 칭찬을 받기 위해 양치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저처럼.
누군가 당신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서
칭찬을 받기 위한 더 좋은 행동을 실천할 거예요.
큰 고래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칭찬의 힘을
바로 오늘부터 실천해 보세요.
사람들이 곁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당신이 부탁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 하고 싶어 질 테 고요.
분명 당신의 삶과 인간관계가 달라질 겁니다.
쓰다 보니 짧지 않은 글이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 당신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어요.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내신 당신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탁월한 당신이 주변 사람들의 탁월함을 발견해 주는
근사한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