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사회가 마비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는 유가 폭락까지 맞물려 어려움을 더했다. 은행은 돈을 찍어내고 금리를 낮췄지만 불안한 미래를 피해 숨어버린 사람들의 심리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경험하지 못한 역병은 이전의 처방으로 해결하기 힘들었다. 문제는 온갖 시스템은 멈췄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돈의 흐름이 멈춘 자본주의 사회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다. 지속가능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일할 곳을 잃은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고 거주지를 위협 받고 있다. 기업은 계약이 취소되고 실주를 하고 유동성 위험으로 월급 지급마저 힘에 부친다. 때문에 정부와 경제주체들은 서둘러 극약처방을 내놓고 있다. 추경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끔 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책과 서민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집단의 이념과 실권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왜곡되기도 하는 모습은 씁쓸하다.
학생이 없는 집 앞 학교에 벚꽃이 쓸쓸하게 피어 있다. 멈춰버린 인간사회를 비웃듯 햇살 마저 근사하다. 나는 어딘가 억울하기도 해서 사람 하나 없는 운동장에 지상이와 킥보드를 들고 나섰다. 운동장 끝에 세워진 농구장에 키보다 훨씬 높은 울타리가 부서져 있었지만 자연스러워 보였다. 물이 조금 고인 곳을 피해 지상이는 조그만 발을 굴려 나름 최선을 다해 킥보드를 밀었다. 바람이 살짝 부니 기분은 더 좋아 보였다. 총총총 나아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슬쩍 지상이 등 뒤를 밀었다. 지상이는 땅에 내렸던 다리 하나 마저 떼어 보드에 올리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로 감탄사를 뱉었다. 분명 신난다. 좋다. 즐겁다. 앞으로 나가자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사회는 분명 변할 것이다. 메르스처럼 국가 재난 질병을 대처하는 법령이 정비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던 사례를 본받아 갖가지 대응책이 나올 것이고 개인 또한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자세로 삶의 패턴이 바뀔 것이다. 기업은 업의 개념과 일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 그 변화 속에 인간을 예측가능한 개체로 관리하려 들 것이다. 작가 유발 하라리는 정부 권력이 생체정보까지 관리하게 되면서 가져올 수 있는 폐해에 대해서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타인과의 ‘사회적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연대의 개념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