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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너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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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대가가 정확하게 수직적 상관관계를 보인다면 인간은 아마도 일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설렘도 기쁨도 없을 테니까.
by
우치다 다쓰루·나카자와 신이치 『일본의 배경과 상황日本の文脈』
“사람이 변했어. 예전에는 안 그랬거든.”
“왜? 예전에는 어떠셨는데요?”
“완전 잘 나갔지. 사실 특채로 뽑을 때 말이 많았어.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 블로거를 비싼 연봉으로 스카우트한다고. 그때 우리 과장이 굉장히 불만이 많았거든. 근데 지금 이렇게 된 거 보고 은근히 속으로 좋아할걸?”
*
박은 와인 마니아였다. 그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지루함 때문이었다. 치열한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아 대기업에 안착했지만 이후 삶은 더욱 피 말리는 국지전이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문제들과 뒤엉켜 겨우 한 걸음 떼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12시간이 넘는 근무시간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회사에서 마련해준 기숙사에 들어오면 침대 위에서 1시간은 누워있어야 했다. 회식이라도 있게 되면 유체 이탈한 영혼은 주말이나 되어서야 겨우 제 몸을 찾아오곤 했었다. 박은 이런 삶이 왠지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삶이 무료하거나 공허하다는 철학적인 느낌보다 그냥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이 기계처럼 컴퓨터에 앉아서 매일 반복하는 업무를 의식 없이 하고 있을 때 선배 김이 찾아왔다. 김은 커피 한 잔 하자고 했고, 박은 조금 놀란 눈으로 살짝 허리를 들면서 꼬고 있던 다리를 얼른 풀고는 “네 알겠습니다. 지금요?”라고 대답했다. 김은 대답 대신에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박은 그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치익-탁’
박은 김이 주는 시원한 캔커피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박은 김과 평소에 따로 대화한 적이 별로 없는지라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모습을 보며 시선을 애써 돌리는 찰나에, 김이 말했다.”박 대리 혹시 와인에 관심 있어?” 의외였다. 박은 와인을 먹어 본 적이 언제인가 생각을 하는 동시에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은 자신이 와인 애호가고 와인에 대한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와인 동호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박이 멤버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박이 와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사실 관심도 별로 없다고 했지만, 김이 다 괜찮고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하라 했다. 박은 의심과 반문을 몇 번 더 표현하다가 남녀 성비가 똑같다는 말에 남초 회사 총각 직원으로서 참여의사를 확실하게 표했다.
그렇게 와인 모임을 나간 지 2년이 지났다. 근사한 여자 친구는 생기지 않았지만, 와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평소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어느새 블로그에 와인 관련 검색을 하면 자신이 상위에 노출이 되고 댓글도 많이 달렸다. 한 명 한 명 늘어가던 이웃은 ‘홈파티 추천 와인’이라는 게시물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노출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후 관련 포스팅을 계속했고, 여러 단체 등에서 강연이나 게스트로 초대받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가 이거였을까. 퇴근 후 방에 들어서면 뻗기만 하던 몸은 자동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직거래로 어렵게 공수해 온 와인을 은은한 조명 아래 홀짝홀짝 마시며 와인에 대한 글을 적었다.
“안녕하세요. 박시영 씨 연락처 맞나요?”
“네. 누구세요?”
“저는 000 백화점 본사 푸드사업부 김정곤 부장이라고 합니다. 블로그에 적힌 연락처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신지요?”
“저희가 백화점에서 와인 판매를 촉진을 위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해당 자리에 마케팅 팀장으로 모실 수 있을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매월 급여의 반을 투자해서 와인을 접하고 사랑하게 된 지 2년 9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