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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 나파밸리를 찾은 이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와이너리는 업무 차 많이 방문했었다. 회사에서 유럽이라는 고풍적인 이미지를 가져와 판매전략을 세우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박 또한 프랑스 와인을 먼저 배웠고 그래서 ‘일로써 와인’은 그곳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와이너리는 고성(古城)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초대받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즐겨 마시던 와인을 음미하면 그 맛이 몇 배는 더 풍성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그 여운을 한국까지 고스란히 가져오기는 힘들었다. 이런 생각만 하는 사람은 비단 박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유럽 와인 시장은 과열되었고, 도드라지게 브랜딩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추락하는 회사 주가와 실적 때문에 박에게 주어진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박은 우연한 기회에 미국 와인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유를 찾아 떠난 이들의 개척 정신과 대규모 자본이 만든 이 와이너리 들에서 색다른 묘미를 느꼈다. 박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미국 출장길을 떠나고자 했었지만... 빌어먹을 원가관리로 출장은 무산되고, 실적 저조로 인해 박은 쫓겨 나가다시피 나와 결국 퇴직금으로 이곳을 여행하게 된 것이다.
박이 방문한 이곳은 몇 해 전 한국인이 설립한 곳이었고 이제 막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다행히 시중의 평이 좋았고, 박 또한 매력을 느꼈다.
“한국 분이시네요?” 박은 시음을 위해 테이블 앞에 앉았고, 와인을 건네주던 여인이 인사를 건넸다. “아 , 네 안녕하세요.”라고 박은 오랜만에 한국어로 인사를 했고, 이후 여인은 호기심을 갖고 여행의 목적 등을 물어봐서 성심껏 대답을 했다. 박이 여기에 오게 된 이유와 자신의 와인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물꼬가 터지듯 대화가 이어졌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여인은 몇 번 손님을 응대하러 자리를 비웠다가 곧장 다시 와서 대화를 이어갔다. 박은 저녁이 되어가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건너뛴 끼니 생각이 들었다. 박은 왠지 운명 같은 만남에 자신의 블로그 주소와 연락처 그리고 혹시나 괜찮으면 식사라도 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물론 여러 잔의 와인 때문에 취기로 생긴 용기 덕분이었다.
이튿날, 여인의 전화를 받은 박은 다시 그 와이너리에 갔다. 햇살이 좋았고, 입구에 마련된 분수대와 내부 공간은 전날보다 더욱 세련되어 보였다. 여인은 입구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녀 옆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함께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김도영입니다. “ 운광그룹 회장 김도영이었다. 몸 담았던 업계에서 꽤나 유명인사라 박이 모를 수가 없었다. 여인은 운광그룹 회장의 딸이었고 그녀가 그를 만난 후 아버지께서 찾는 사람을 만났다고 온 집안을 흔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잠시 만나러 온 것이었고, 결국 여인과의 만남은 1차 면접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면접관에 잠시 흑심을 품었다는 생각에 박은 살짝 무안하고 부끄럽고 우스웠다.
“그럼, 나와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있는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김 회장은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박은 망썰였다. 역시나 너무 좋은 조건과 기회였지만, 회사일이 떠올랐다. 결국 박은 속마음을 드러내며 그저 여유가 있을 때까지 와인을 더 알고 싶다고 했다.
“거듭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와인을 더 알고 싶습니다. 포도나 기르고 따 보고 싶은 생각이 들뿐 지금 당장은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그럼, 포도 농장에서 일해보게나.”
“...???...!!!”
박은 거짓말처럼 “네”라고 대답하고는 그렇게 2년 가까이 포도 농장에서 일했다. 포도나무를 관리하기 위해 지형과 수맥 그리고 일조량 등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수확을 하고 1, 2차 발효를 거친 후 숙성을 하는 과정은 고단한 일이었지만 보람찼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해 탄생한 여러 와인을 맛보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가 맛보고 싶은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이후 5년. 박은 baso라는 브랜드의 와인을 만들었다. 박을 전적으로 믿고 격려하며 투자해준 김 회장과 그의 딸이자 여자 친구인 수미 덕분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꾸준하게 관리한 박의 블로그는 더욱 폭넓고 다양한 정보가 가득한 와인 전문 매거진이 되었다. 박은 그곳에서 자신의 와인 제조 일화를 소개했으며, baso 탄생을 알렸다. 입소문은 빨랐고 수요가 급증했다. 그 사이 김 회장의 와이너리는 동양인이 만든 새로움이라는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불교를 연상케 하는 연꽃잎을 로고로 썼다. 박의 와인은 최소 100만 원이 넘는 컬트 와인(최고급 와인, 수집과 투자용으로도 구매가 이루어지기도 함) 제조사인 김 회장 와이너리가 내놓은 첫 대중 와인이 되었다.
친환경적으로 직접 재배한 포도 원을 100% 사용하며 비밀로 관리되는 숙성 방법에서 얻은 타닌(Tannine, 떫은맛을 좌우하는 요소)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동양적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을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맛을 제공했다. 박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브랜딩 기술과 네트워크를 비롯해 그의 블로그와 유튜브는 기존 산업구조를 바꿀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 났다.
“지금의 성공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와인이 너무 좋아요. 굳이 따지자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와인은 숙성의 결과물입니다. baso에 사용되는 포도는 우리가 키운 전체 포도 중에 1% 밖에 수확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슴이나 새가 다 먹거나 썩습니다. 그중에 살아남은 것들만 손으로 수확해서 쓰는 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이 포도는 상상보다 훨씬 더 좋은 맛을 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숙성된 이후에야 세상에 나옵니다. 적당히 익지 않고 때가 안 맞으면 쓰고 맛이 없어요. 몇몇 사람들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하기도 해요.
저도 그랬어요. 잘 모르고 조금 안다고 잘난 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와 설치고 다닐 때 쓰고 떫은 지 모른 채 잘난 체했었어요. 몰라 줄 때는 나 정도는 괜찮다며 세상을 욕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틀렸어요. 저는 제 손으로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어 보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대충 살았구나. 아는 게 없구나.
부끄러웠습니다.
그게 출발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이 와인과 성공에 대한 저의 지분은 10%로도 되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누구보다 이것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계속 배울 수 있고 신비로운 자연의 마법에 감탄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과 음식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당신은 와인 같다고 말해주고 권해주며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박은 이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연재 끝 -